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389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토지문기(土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3년 이 노 쇠노미 / 李 奴 金老味 明文
- ㆍ발급자
-
이 노 쇠노미(李 奴 金老味)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홍원강(洪元康)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3년 2월 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十三年癸巳二月初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8 × 78.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33년(순조 33) 2월 6일에 이 진사댁 종 쇠노미[金老味]가 강릉 대창(大昌)에 사는 홍원강(洪元康)에게 470냥을 받고 상전댁 논 다섯 곳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33년(순조 33) 2월 6일에 이 진사댁 종 쇠노미[金老味]가 강릉 대창(大昌)에 사는 홍원강(洪元康)에게 470냥을 받고 상전댁 논 다섯 곳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이다. 쇠노미는 1831년 이후(李垕, 1773~1832) 준호구인 ‘A003_01_A00179_001’의 노비질(奴婢秩)에 ‘매득비(買得婢) 삼덕(三德)의 1소생 종 쇠노미(釗老味) 을축생(乙丑生, 1805?)’이 기재되어 있으며, 1834년 이용구(李龍九, 1798~1837) 준호구인 ‘A003_01_A00180_001’에는 ‘매득비 삼덕의 일소생 종 쇠노미[金老味] 을축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쇠노미의 상전 이 진사댁은 1825년 생원시에 합격한 이용구로 추정된다. 쇠노미의 상전 이 진사댁은 10년 뒤인 1843년에 매매가 300냥을 지불하고 위 논들을 다시 사들였다는 것을 ‘A003_01_A00390_00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한 ‘구배지 1장’은 병진년 4일에 북평(北坪)에 사는 신생원(辛生員)이 자신의 차노 원태(元太)에게 위의 10번과 14번 논의 매도행위를 위임하면서 작성해 준 ‘A003_01_A00758_001’이다. 이와 함께 본 매도를 위해 동일(同日)인 1833년 2월 6일에 쇠노미의 상전이 쇠노미에게 작성해 준 배지 ‘A003_01_A00727_001’이 존재한다.
쇠노미의 상전 이 진사댁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쇠노미에게 매도행위를 위임하여 논 다섯 곳을 팔게 하였다. 매도하는 논은 직무(直畝, 현 강릉시 운정동 海雲亭 앞 들판)에 있는 조자(鳥字) 자호의 10번 13짐4뭇, 14번 20짐, 9분번(分番) 22짐2뭇 내 17짐2뭇, 냇물에 뒤덮혀 쓸려 내려간 천번(川反) 실제 5짐, 15번 12짐5뭇으로 총 68짐1뭇이나 문서에는 50짐9뭇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두락수를 기준으로 총 5섬지기이다. 쇠노미는 상전의 배지에 따라 매매가로 470냥을 받고 논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본문기 5장과 구배지[舊牌字] 1장을 위의 논과 함께 홍원강에게 넘겼다. 문서 말미에 ‘나중에 허튼소리를 한다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는 내용의 추탈담보문언을 명기하고, 매도대행자인 쇠노미는 좌촌(左寸)으로, 이 거래의 증인으로 참여한 양인 이복립(李福立)과 유대업(大業)은 착명으로 각각 서명하였으며, 본 문서의 작성자인 필집 석필규(昔弼奎)는 상중으로 서명하지 않았다. 증인 이복립과 필집 석필규는 선교장의 거래매매 때 증인이나 필집으로 수차례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원문
道光十三年癸巳二月初六日 大昌洪元康前明文 右明文爲臥事段 吾矣宅以要用所致 直畝鳥字十畓拾參負肆束 十四畓貳拾負 九分畓貳拾貳負貳束內拾柒負貳束 川反下實伍負 十五畓拾貳負伍束 合伍拾負玖束伍石落只廤乙 右人前 牌字導良 折價錢文肆百柒拾兩 依數捧上是遣 自今年爲始 永永放賣是矣 本文記五張果 舊牌字一張 竝爲許給爲去乎 日後良中 如有雜談是去等 持此文 告官卞正印 畓主李進士宅奴金老味[同人左寸] 執筆喪人昔弼奎喪不着 證人良人李福立[着名]柳大業[着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