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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15_01_A00015_001
- ㆍ입수처
- 가톨릭관동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1년 미상인 간찰 별지 / 簡札別紙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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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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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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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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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明憲太后進饌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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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2 × 24.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 한자자료형태
- ㆍ정의
- 1901년 미상인이 명헌태후진찬연을 포함한 당시의 정사와 집안일등을 알리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901년 5월경(추정)에 미상인이 여러 가지 근황을 전달하고자 발급한 간찰 별지(別紙)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 집안 선조의 시호(諡號)를 결정하는 시좌(諡座) 일정이 잡히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드는데, 게다가 명헌태후(明憲太后)의 진찬연(進饌宴)이 14일에 있다는 점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혹자는 20일 이후에 시좌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 모두 낭설일 뿐이니, 조정에서 별다른 연고가 없다면 다음 달 상간에 시행될 수 있을 것인지 물었다. 의정으로 윤(尹) 재상이 환임(還任)하여 조금 위로되는 점이라고 하면서, 맹(孟) 대감이 전에 만났을 적에 그의 말은 이 일을 성사하지 못하고 끝날 듯한 어투였지만 어제 듣기에 의정으로 환임한다고 하니 아마도 가망이 있을 것이라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자신 집안의 일은 이 달이 정밀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여전히 복주(覆奏)가 이루어지지 못해 애가 타는 심경을 토로하였다. 이어서, 상관(相關) 명목 비용은 국담(菊潭) 측은 입수한 금액이 80민(緡)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보책(譜冊)을 찾아가는 이가 없어 마감이 지체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이는 형세상 그러한 일이지만 언제 끝이 날 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애타는 심경을 이야기 하고,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는 성백(聖伯) 어른이 말로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명헌태후는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洪氏)를 가리키는데,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참조하면 명헌태후의 나이가 71세가 되는 것을 경하하는 진찬연이 1901년(광무 5) 5월 13일에 치러졌고, 이때 의정부의정은 윤용선(尹容善)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명헌태후의 진찬연과 같은 국가 의례 관련 언급, 선조의 선양사업으로써 증시를 추진하고자 공론을 형성하고 유력자를 교섭하여 청탁했던 당시의 관행, 이와 관련한 기금을 수합했던 실상 등 대한제국기 사회사적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
별지는 간찰의 원폭과는 별도의 종이에 작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서간류 문서로, 원장 내에서 다 말하지 못한 내용을 추록으로 작성하지 않을 경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은밀하거나 각별한 보안이 필요한 경우 등에 작성되었다. 별지는 원장에 속한 문서로서, 원장과 함께 동봉하여 발급되므로 내용상 중요한 사안만을 간단히 적으면서 간찰의 투식이나 발급 연월일, 발급자 명칭 등이 생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지(胎紙), 협지(夾紙), 별폭(別幅)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김효경,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
참고자료
제목 없음
諡座姑未指期 燥鬱如何盡旣 且明憲太后進饌 在今十四 不須擧論 而或者念後當設座 皆妄度 朝家無它故 則來月間 或可施行耶 議政還任尹相 稍爲可慰 而孟台前見 則語意似不成終矣 昨聞議政還任 則庶有可望云 然第吾家事 因此月不精 尙未覆奏 焦火之狀 直欲奮飛 相關條來訪 菊潭則入手者才八十緡 餘無譜冊來覓者 故未之磨勘云 勢則然也 未知何時有究竟也 出徒見顔 入無開口 以若壅滯之見 只是內沸而已 想欲俯聽者 故起坐燈下 略略仰告 而餘外諸機 都在聖伯丈肉報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