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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15_01_A00003_001
- ㆍ입수처
- 가톨릭관동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5년 이영필 간찰 / 李英弼 簡札
- ㆍ발급자
-
이영필(李英弼)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제상(李濟相)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905년 12월 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 臘 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5.4 × 25.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 한자자료형태
- ㆍ정의
- 간지상 을로 시작되는 해의 12월 5일 영필이 집안 어른인 이제상에게 문중에서 시국에 대처해야 함을 권하는 내용의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을○년(1905 추정) 12월 5일에 족종(族從) 영필(英弼)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族從’으로 표기하여 같은 친족 내 종반관계임을 나타내었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고, 본문의 첫머리에 “元哉 重侍案 敬展”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자가 ‘원재(元哉)’인 인물이고 당시 조부모 대까지 모시고 있는 상황임을 나타내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 요즘 상대의 연로하신 노친의 안부를 물었다. 본론으로, 요즘 발생한 어떠한 일에 관하여 들을 때마다 나날이 심해지니 한심하다고 하면서, 통문(通文)과 간통(簡通)들을 필시 두루 보았을 것인데, 다른 면(面)의 각 문중의 유생들이 이미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물었다. 우리 가문만 수수방관할 수 없는데도 아직 한 번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사방에서 소문으로는 외부에서 이를 지적하고 있다고 하니, 온 사림의 비방을 다 들은 뒤에야 고개를 숙이고 일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냐고 했다. 이에 모두 동시에 일제히 나서서 회문(回文)을 내고 모당(慕堂)에 모이는 것이 어떠한지 물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안부나 근황 및 유생 상소나 공론 형성을 위한 통문 발급과 회의 소집 등 향촌 내 대소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대응과 같은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영필은 본관성씨나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수급자로 기록된 ‘원재’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유학자 이제상(李濟相, 1863~1932)의 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 문서의 전래경위나 원소장처 등이 확인되지 않으므로 동일인물인지 여부는 미상이다. 만일 이제상이 수급자라면 관계호칭이 “族從”이라는 점을 통해 발급자는 같은 전주이씨의 ‘이영필’로 추정 가능하다. 또한 ‘을○년’은 본문 내용에서 상소를 위한 발통과 회의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정황으로 보면 을사늑약이 있던 1905년으로도 추정 가능하다. 이제상은 자는 원재, 호는 청사(靑社),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부친은 이희일(李羲一)이다. 어린 시절 족종조 계소(溪巢) 이석영(李錫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장성하여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9년 학부박사에 제수된 이력이 있다. 저서로 『청사집』이 있다.
이상의 추정이 맞다면 이 간찰은 1905년 10월에 체결된 을사늑약에 대한 반발로 전국적으로 발생했던 상소와 의병 운동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을사늑약 당시 유림들의 사유와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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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제목 없음
元哉 重侍案 敬展
近日篤老筋力 別無大損否 時聞日甚一日 極爲寒心 通文與簡通 想必徧覽矣 而外面各門中僉員發行 得不聞知耶 吾門不可安坐岸視 而尙無一番聚首之論 莫知其故 四邊●●(誚謗)所聞 以自外指目云 恰得士林誚謗然後 俯首而從事 其可乎不可乎 莫如同時齊發 來納 出回文 會慕堂 如何如何 忙不宣
乙 臘 五日 族從 英弼 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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