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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673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성일 간찰 / 李聖一 簡札
- ㆍ발급자
-
이성일(李聖一)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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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 至月 念七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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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8.7 × 4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임술년 11월 27일 재종(再從) 이성일(李聖一)과 미상년 11월 1일에 종숙(從叔) 미상인이 각각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두 건의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2:세로:26, 가로:39.2, 3:세로:28.9, 가로:6.3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임술년 11월 27일 재종(再從) 이성일(李聖一)과 미상년 11월 1일에 종숙(從叔) 미상인이 각각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두 건의 간찰이다. 한 건의 피봉에 두 건의 원폭이 있다는 점이나 서체가 동일하다는 점으로 보면 이 두 건은 동일 발급자의 간찰로 보인다. 그렇다면 [1]은 재종간인 미상인이 수신자이고, [2]는 미상인 수신자의 아들로 발급자와 숙질간인 인물로 볼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直長宅 回傳’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직장’ 관직을 역임했거나 ‘직장댁(直長宅)’이라는 택호를 가진 곳에서 거주했던 인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간찰의 내용만 가지고는 발급자와 수신자를 특정할 수 없다. 다만 동일 기탁자의 여타 문건들 가운데 구미 선산의 덕수이씨(德水李氏) 문중 수발급처가 많다는 점에서 이 간찰의 수발급자 역시 해당 문중 일원으로 추측된다.
[1]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올해 여름과 가을 이래로 소식이 막혀 늘 그립던 중에 상대의 서찰을 받고 너무 기뻤는데, 하물며 눈 내리는 추위에 상복 입은 체리가 좋고 온 가족들도 편안하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 뿐만 이겠냐고 했다. 하지만 신실(申室)이 요절한 일은 참통하고 슬픈 일인데, 자식도 없다고 들었으니 혈육이라도 있었으면 이 지경에 이르렀겠냐고 했다. 그리고 상대 장인어른의 상사도 경악하게 된다고 했다. 자신의 근황은 한결같고, 이른바 조섭하며 지내는 상황도 전혀 말이 되지 않는데 흉년까지 당해 생계를 이어갈 계책이 없다고 하는 등 자신과 주변, 큰댁의 흉년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기질(琦侄) 내외의 병, 성원 종(聖元從)의 초사(初仕) 등에 대한 언급이 있다.
[2]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격조하여 거의 상대를 잊어버릴 뻔 했다가 서찰을 받으니 진정 상대와 자신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매우 위로된다고 했다. 형수님께서 낙상한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은 뒤, 서찰을 받은 뒤로 여러 날이 지나 환후가 어떠한지 다시 물었다. 이어서 상대 내외의 병은 어떤지 안부, 상대 형의 복시(覆試)는 합격했는지도 물었다. 자신은 종기 증세가 달포 넘게 낫지 않고 있는 근황을 알렸다. 인편이 바빠서 형님께는 서찰을 쓰지 못함을 언급하고, 각 집안 여러 친족들도 한결같이 편안한지, 형칠(衡七)의 병도 어떠한지 전에 위장(慰狀)을 연달아 받아놓고 답장을 쓰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빠트리게 된 사정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본문의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근황이나 안부, 상장례, 질병, 과거시험 및 임명 등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성일은 자세한 이력이나 정보는 미상이다.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자료센터 한국학자료포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直長宅 回傳
[1]夏秋以來 聲息莫聞 尋常懷思 無日不憧憧 卽於便至 獲見手札 欣慰之極 不覺紙毛 況審雪寒 服履晏勝 渾致俱安 是則協願 而申室之夭 慘悼慘悼 曾聞無育矣 有遺肉而至斯耶 絶悲絶悲 且尊岳丈喪事 亦爲驚愕也 從狀一依 而所謂調過 萬不成說中 當此歉歲 萬無計策 奈何 第聞隣農 亦未免歉云 而大宅所農 尤不成說云 何以接濟也 琦侄之外內病情 尙無入佳之望云 尤不勝悶切處也 叔哉係何而搬移于金山地也 爲念 聖元從初仕 奇幸奇幸 無論遠近 吾門之寂廖莫比 而有此官銜者 實爲欣慶也 何間還第云耶 餘煩心艱草 不宣
壬戌 至月 念七 再從 聖一 頓
[2]奉謝 幾乎忘形 承書 良覺其君我之存 斯慰且馳 極矣 而嫂主落傷 果何以中此也 內病已知之症 然或無動靜之驗效否 書后日多 卽玆嫂主患候 更如何 君之所愼與內病 亦復如何 汝兄覆試 可得參榜耶 此狀以瘇漸 跨月未合 苦哉苦哉 便忙 兄主前未能修上 悚惶悚惶 各家諸族 亦得一安否 衡七所愼 亦何如云也 前有慰狀 而連施未謝 今又闕之 人事上蔑矣 以此傳之也 餘走草不宣
至月 一日 從叔 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