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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666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5년 김증현 간찰 / 金曾鉉 簡札
- ㆍ발급자
-
김증현(金曾鉉, 1796~?)
원문내용 戚從 曾鉉 謝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65년 10월 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丑 十月 初六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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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1.9 × 49.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축년(1865) 10월 6일에 척종(戚從) 김증현(金曾鉉, 1796~?)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2:세로:22.4, 가로:13.9, 3:세로:32.1, 가로:6.9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을축년(1865) 10월 6일에 척종(戚從) 김증현(金曾鉉, 1796~?)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戚從’으로 표현하여 상대와 인척간의 종반관계임을 나타내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梅鶴亭 靜案 回納’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당시 ‘매학정(梅鶴亭)’이라고 하는 택호를 가진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매학정은 선산(善山, 경북 구미) 소재의 정자이자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75)의 별호로, 수신자는 황기로의 사위 옥산(玉山) 이우(李瑀, 1542~1609)의 후손인 덕수이씨(德水李氏) 문중 일원일 가능성이 있다. 좌측에 기재된 ‘戚從 尙牧 謝狀’이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상주목사를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와 이별한 회포가 여태 암담하던 차에 오늘 서찰을 받고 온화한 겨울철 날씨에 정양하는 체후가 여독으로 편찮으시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고 했다. 다만 복시(覆試)에 관한 일은 염려되는 마음이 그지없다고 했다. 자신은 병으로 고달픈 일이 근래에 더욱 심해졌고, 허리 병도 견인통이 움직일 때마다 아프니 고민되고 딱하다고 했다. 상이 난 뒤인데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 때문에 애통한 심경만 간절하다고 했다. 서울 인편이 그간 격조하여 순영(巡營)으로 왕복하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상대가 보내준 세 종류의 선물은 상대의 힘으로 어찌 이러한 물건을 얻을 수 있었냐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별지에는 상대에게 보내는 ‘정육(正肉) 5근, 백청(白淸) 1되’의 물목과 수량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근황 및 지방관으로서의 생활이나 물품을 왕래하던 모습 등의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김증현은 자는 기중(沂仲),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부친은 김재화(金在華)이다. 1827년(순조 27) 정해 증광시 생원 3등 7위로 입격하였다. 이후 참봉, 인의, 감찰 등을 처쳐 황간현감, 괴산군수, 순흥부사, 이천부사, 상주목사, 돈녕부도정, 첨지중추부사, 한성좌윤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그가 상주목사에 임명된 시기는 1865년(고종 2) 3월 17일이므로, 이 간찰이 발급된 해에 상주목사에 재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자료센터 한국학자료포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梅鶴亭 靜案 回納/ 戚從 尙牧 謝狀/ [官印]/ 恪
別懷尙黯 卽承審冬溫 靜候不以勞憊有諐 擎慰無斁 第覆試事 爲之貢念不已 戚從 病憊近益甚焉 腰疾又此牽引 動輒叫痛 悶憐悶憐 喪餘 只隔遙外 只切慟霣耳 京便間阻 巡營往復 姑未聞之 甚鬱 三惠以座下權力 何以得此 感則深矣 還多不安也 餘擾甚 姑不備謝式
乙丑 十月 初六日 戚從 曾鉉 謝
正肉伍斤 白淸一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