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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12월 11일에 김창수(金昌銖)가 혼인 상대 측(신부 측)에 연길(涓吉)을 잘 받았음을 알리고 의제(衣制)를 기록한 의양단자(衣樣單子)를 보내기 위해 발급한 혼서(婚書, 衣制書)이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발급자의 ‘謹拜上狀’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명확한 수신자 정보를 알 수 없다. 다만 동일 기탁자의 여타 문건들 가운데 구미 선산의 덕수이씨(德水李氏) 문중 수발급처가 많다는 점에서 이 간찰의 수신자 역시 해당 문중 일원으로 추측되나 미상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특별히 보내주신 서한을 받고 섣달 추위에 존좌의 체후와 일상이 여러모로 왕성하다는 점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고 했다. 본론으로, 혼례에 관한 일은 이미 연길을 받았으니 두 집안의 다행이 이보다 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의제를 상대의 분부대로 써서 보낸다고 했다. 별지에는, 길례(吉禮)를 당연히 정한 날에 수행해야 하지만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아 모든 상황이 준비되지 못했고 인근에 유행병도 말끔해지지 않아 이를 치를 도리가 없다고 하면서, 상대측의 일과 형편이 촉박한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이 일은 사람의 대사이니 황급히 치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봄에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다시 길일을 잡아 혼례를 치른다면 두 집안의 온당한 점이 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목에도 문제되는 점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근황 및 혼례 과정과 별지에서 혼례 기일을 조정하는 이른바 ‘마택(磨擇)’의 사례 등을 알 수 있다. 발급자 김창수의 자세한 이력이나 정보는 미상이다.
과거의 혼례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 혼처를 물색하고 혼담을 주고받는 의혼(議婚)의 단계를 거쳐 중매를 통해 결혼할 집안이 정해지고 신부 측에서 혼인을 수락하게 되면 신랑 측 집안에서 정식으로 청혼서의 일종인 ‘강서(剛書, 剛儀)’를 보내 청혼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강서에는 신랑의 사주(四柱, 태어난 연월일시)가 기록된 사주단자(四柱單子, 四星單子‧柱單)를 함께 동봉하여 보내는데, 이는 신랑의 사주를 받은 신부 측에서 일가(日家)를 통해 혼례의 길일을 잡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강서와 사주단자를 받은 신부 측은 길일을 잡은 뒤 신랑 측에 이를 통보 하게 되는데 이때 보내는 혼서가 ‘연길서(涓吉書)’이다. 또한 여기에는 강서를 잘 받았음을 알리고 길일을 통보하는 내용 외에 신랑의 옷 치수를 적어 보내주기를 요청하는 내용도 포함되는데 따라서 연길서는 ‘청의제서(請衣制書)’라고 불리기도 한다. 연길서를 받은 신랑측은 혼례 날짜를 확인한 뒤 날이 합당하다고 여기면 다음으로 ‘의제서(衣制書, 衣樣書)’를 보내게 되는데, 이때 함께 동봉되는 문서가 옷 치수를 기록한 의양단자(衣樣單子)이다. 만일 신부 측에서 잡은 기일이 사정에 의해 합당하지 않게 여기게 되면 신랑 측에서 기일을 조정하기를 청하는데 이는 고문헌에서 주로 ‘마택(磨擇)’이라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의제서까지 모두 주고받으면 납폐와 혼례를 치르게 되는데 이때 신랑 측에서 신부 측으로 발급하는 혼서가 예장지(禮狀紙)라고 불리는 납폐서(納幣書)이다. 이후 신행(新行, 于歸‧于禮) 등의 절차를 치르며, 신랑 측과 신부 측은 성혼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긴 서찰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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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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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拜謝狀/ [手決]
伏承耑翰 謹審臘沍 尊體動止萬旺 何等仰慰 就親事旣至涓吉 兩家之幸 何愈於是哉 衣製依敎錄呈耳 餘不備 伏惟尊照 謹謝狀
壬辰 十二月 十一日 金昌銖 再拜
吉禮當以定日隨行 而歲色無幾 凡節未備 且逼隣不淨 萬無過行之道 非不知那上事勢之促泊 此是人家大事 則豈可遑急爲之也 第待開春日㬉 更爲擇吉成禮 非但兩家之穩當 亦爲瞻聆之無瑕 以此海諒 千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