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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250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695년 윤증 윤추 간찰 / 尹拯 尹推 簡札
- ㆍ발급자
-
윤증(尹拯, 1629~1714)
윤추(尹推, 1632~1707)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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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8월 2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亥 八月 卄二日 損下 拯 推 頓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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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8.2 × 49.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해년(1695) 8월 22일에 윤증(尹拯, 1629~1714)‧윤추(尹推, 1632~1707) 형제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을해년(1695) 8월 22일에 윤증(尹拯, 1629~1714)‧윤추(尹推, 1632~1707) 형제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損下’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평교간에 자신을 낮추는 겸사로 쓰인 말이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원폭과 함께 배접된 형태로 현전하는데, 원래 간찰첩 등의 형태로 제책되어 있던 것의 낙장으로 보인다. 피봉에는 발급자 정보로 단지 ‘謝狀上’이 기록되어 있다. 수신자 정보로 ‘文玉兄/白奉事 服座下’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백(白)씨 성에 자가 문옥(文玉)인 봉사 벼슬을 지낸 이력이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와 교유했던 인물 가운데 서촌(西村) 백광서(白光瑞, 1638~1716)가 장흥봉사(長興奉事)를 역임한 이력이 있으므로 수신자를 그로 추정할 수 있다. 그는 당시 복상(服喪)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봉의 하단 합금처에는 발급자의 수결(手決)과 함께 이 간찰을 삼가 봉한다는 의미의 ‘謹封’이 적혀있다. 이러한 결구(決句)와 수결 등은 일반적으로 서찰의 보안이나 신표의 기능을 한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제 지경(志卿)이 지나가는 편으로 이제야 여름과 가을 이래로 상복을 입고 있는 체리와 기거가 그런대로 편안함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일부러 보내준 하인을 통해 서찰도 받아서 열어보게 되니 마치 직접 만난 듯이 마음이 시원했다고 했다. 다만 슬프고 어려운 상황은 더욱 서글프게 한다고 하면서, 조섭하고 보양하는 데에 더욱 뜻을 두어 안팎으로 완전히 회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번 방문 해 주겠다는 뜻을 알았으니 기대하겠지만 병을 무릅쓰고 움직였다가 몸이 상할까봐 걱정된다고도 했다. 자신은 늙고 병들어 사람을 상대하는 일상은 아직 이전대로라고 하였고, 성상의 은명이 아직 거둬지지 않아 근심 속에 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자정(子貞)이 지난번 또 딸의 상을 당해 서울로 올라갔으니, 해를 연이어 참척의 상을 당해 측은하다고 했다. 용여(用汝)도 딸의 상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상이 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근황이나 여타 친우들이 상척을 당한 일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인물인 ‘지경’은 『명재유고』 권36에 실린 「임천군수임공묘지명(林川郡守任公墓誌銘)」 및 여타 서간문들을 참조하면 이름은 임진창(任震昌, 1656~?), 자는 지경, 본관은 풍천이며, 임천군수를 지낸 임질(任耋, 1612~1676)의 여섯째아들이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자정’은 사산감역(四山監役)을 지낸 이사길(李師吉, 1639~1703)의 자로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용여’는 임수간(任守幹, 1665~1721)의 자로 호는 돈와(遯窩), 본관은 풍천(豐川)이다. 이들은 모두 윤증과 교류가 있던 인물이다. 추록은 2건이다. 첫째는, 상대가 보내 준 생강(生薑)은 감사히 잘 받았고, 5속(束)은 자경(子敬)에게 전해줬다고 했다. 윤증이 백광서에게 발급한 여타 간찰에서도 생강을 받은 일을 기록한 점이 많은 것으로 보면 당시 백광서 측에서 이러한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생강을 나누어 준 ‘자경’은 윤진(尹搢, 1631~1698)의 자로 호는 덕포(德浦)이고 부친은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이다. 윤증의 부친인 윤선거는 윤순거의 생가 아우이므로 윤증과 윤진은 삼종간이면서 부친의 생가로 치면 사촌간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서찰을 다 쓰고 난 뒤에 생각나는 점을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임금호(林錦湖)의 문집 발문 중에 우옹(尤翁)과 문곡(文谷)이 지은 글 2편을 구하니 박사술(朴士述) 편에 부쳐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임금호의 문집’은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1504~1547)의 시문집으로 『금호유고(錦湖遺稿)』라는 제목으로 현전한다.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가 지은 서문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문곡 김수항(金壽恒)이 지은 발이 수록되어 있다. 김수항은 임형수의 「행적기략(行蹟紀略)」을 서술하기도 했으며, 『문곡집』에는 그의 묘갈명도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언급된 ‘우옹과 문곡의 발문’은 바로 송시열과 김수항이 각각 지은 『금호집』의 발문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집은 당시 광주목사(光州牧使)였던 이민서의 협조로 1677년에 광주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그리고 ‘박사술’은 안촌(安村) 박광후(朴光後, 1637~1678)로 추정된다. 그는 본관은 순천(順天), 부친은 박천용(朴天用)이며, 송시열의 문인이다.
발급자 윤증은 자는 인경(仁卿)‧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부친은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이다. 형제로 윤추(尹推, 1632~1707), 윤발(尹撥), 윤졸(尹拙), 윤읍(尹挹) 등이 있고, 아들로 윤행교(尹行敎, 1661~1725), 윤충교(尹忠敎)가 있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 등과 교유하였고,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탄옹(炭翁) 권시(權諰) 등에게 학문을 배웠고, 뒤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었다가 후에 노소분당 때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하였다. 제자로 체천(棣泉) 오수채(吳遂采), 서주(西州) 조하망(曺夏望), 심성희(沈聖希) 등이 있다. 천거로 지평, 호조참의, 대사헌, 우참찬, 좌찬성, 우의정, 판돈녕부사 등에 제수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저서로 『명재유고』 등이 있다. 윤추는 자는 자서(子恕), 호는 농은(農隱)‧청송재(靑松齋)이고 윤증의 아우이다. 1668년(현종 9)에 문과 전시에서 낙방한 뒤로 향촌에 은거하며 도학을 연마하였다. 이후 천거로 회덕현감, 정산현감, 석성현감, 용담현령, 예빈시정, 청송부사, 김제군수, 장령 등에 제수되어 출사와 사직을 반복하였다. 저서로 『농은유고』가 있다. 수신자 백광서는 자는 문옥(文玉), 호는 서촌(西村),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부친은 백홍윤(白弘胤)이다. 윤증의 부친 윤선거(尹宣擧)의 문인이다. 1663년(현종 4) 계묘 식년시 진사 3등 68위로 소과에 입격하였다. 이후 경기전참봉, 장흥고봉사를 역임한 이력이 있다.
- · 『承政院日記』 金壽恒, 『文谷集』 宋時烈, 『宋子大全』 尹拯, 『明齋遺稿』 林亨秀, 『錦湖遺稿』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文玉兄 謝狀上/白奉事 服座下/[手決]謹封/【乙亥八月卄二】
昨志卿之過 始審夏秋來 服履起居之粗安 極以爲慰豁矣 卽承委伻以書 披玩手滋 若得面瀉 第悲苦之況 令人增愴 唯願加意調養 更表裏完復 如何 知有一者命駕之意 深用企幸 而亦恐强動而致傷也 此中 老病相對 姑依昨 而恩命尙不收 憂懼度日而已 子貞頃又遭其女喪上洛 連年遭慘慽 可惻可惻 用汝曾又遭女喪 無處無喪威 傷如之何 眼暗神昏 草復只此 更希霜冷加護 謹謝狀上 乙亥 八月 卄二日 損下 拯 推 頓
惠生薑 珍荷無已 五束傳致于子敬耳
追控林錦湖集跋文 尤翁文谷所製二篇 幸求之 朴士述便中寄示 如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