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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245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시문류-서(序)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4년 민백분 산문 / 閔百奮 散文
- ㆍ발급자
-
민백분(閔百奮, 1723~1793)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민재(閔再興,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54년 4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時甲戌閏四月下浣 宗人 百奮 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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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2.7 × 75.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술년(1754) 윤4월 하순에 종인(宗人) 민백분(閔百奮, 1723~1793)이 같은 집안 종족(宗族) 민재흥(閔再興)이 수직(壽職)을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서문(敍文)을 수록한 문적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갑술년(1754) 윤4월 하순에 종인(宗人) 민백분(閔百奮, 1723~1793)이 같은 집안 종족(宗族) 민재흥(閔再興)이 수직(壽職)을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서문(敍文)을 수록한 문적이다. 원폭은 두 폭의 종이를 붙여서 제작한 종이를 사용하였다. 우측의 일부분 마모와 충해가 있지만 문맥을 파악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 수급자에 관해, 군의 이름은 재흥, 자는 기부, 본관은 여주라고 하였다. 그와 관련한 과거의 일을 서술하면서, 예전 정묘년 가을에 여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당시 거상 중이었던 자신의 선조고이신 충문공을 뵈었으니 그때의 나이가 15세였다고 했다. 그런데 기사환국(1689)을 맞아 충문공과 그의 둘째 형님인 문충공이 모두 근심에 빠져 살던 곳을 떠나 머물 적에 상대는 번번이 찾아와 진심을 다해 모셨고, 갑술환국(1694)으로 복권 되어 다시 돌아왔을 때도 상대는 따라 왔었다고 했다. 을해년(1695)에는 한강도승(漢江渡丞)에 제수되어 치적을 쌓았고, 자신의 선군께서 때를 잘못 만나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뒤 곤궁한 처지를 당했어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자리를 짜고 곡식을 돌보며 주인을 조력했다고 했다. 금상 갑술년(1754, 영조 30)여 네 전(殿)의 휘호를 추상하면서 경외의 80세 이상인 자를 모두 가자하라는 특지가 내려져 상대가 통정계를 받게 되었다고 하는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충문공은 지재(趾齋) 민진후(閔鎭厚, 1659~1720)를 가리키고, 문충공은 단암(丹巖) 민진원(閔鎭遠, 1664~1736)을 가리킨다.
저자 민백분은 자는 흥지(興之),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부친은 숙야재(夙夜齋) 민익수(閔翼洙)이고 둔촌(屯村) 민유중(閔維重)의 증손이다. 그는 목릉참봉(穆陵參奉), 영춘현감(永春縣監), 회덕군수(懷德郡守), 황주목사(黃州牧使), 나주목사(羅州牧使) 등을 지냈고, 1770년(영조 46) 경인 정시 병과 6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참의, 충청감사, 대사간, 도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 · 『承政院日記』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君名再興 字起夫 驪興人 在昔丁卯秋 自驪鄕至京師 拜我先祖考忠文公於草土之中 君時年十五 忠文公見而愛之 仍館之 已而値己巳之變 忠文公與仲氏文忠公 憂愁畏約 未奠居止 而君輒隨其所之 左右服勤 小心謹密 未嘗有過二公亟稱之 甲戌 天心大悟 坤位復正 忠文公兄弟始還舊第 君又從焉 乙亥 授漢江渡丞 廉白慈祥 蠲革弊瘼 津民愛戴 立碑以頌之 逮夫我先君子之世 則先君子遭時不幸 謝官歸鄕 窮戹萬狀 君備嘗囏苦 而無少怨尤 惟蚤夜織席觀稼 以助主人焉 今上甲戌 追上四殿徽號 仍命京外年八十以上人竝加資 蓋特恩也 君遂得通政堦 嗚呼 君以肅廟朝衣冠之人 今於六十年之久 而乃追被肅廟徽號之推恩 儘亦希貴事也 君於余爲三世舊賓客 余愍君老 君憐余病 京鄕行住 未或一日 相捨方從 余於湖西之春城任所 余於君超資之日 爲設宴以娛之 君韶顔白髮 頂玉腰紅 中堂而坐 匙箸不輟 酒數行 輒軒然起舞 座者莫不吐舌而壯之曰 孰謂八耋翁 若是其健也 余惟壽之道有二 曰靜曰仁 君自幼凝默寡言笑 每事必推讓於人 常存不知不能底意思 而若其立心制行 則有確乎不可奪之操 見人不是 殆不欲正視 平居無所營爲 但終日危坐若泥塑 自少至老 率有一定之則 視聽起居 幾無損於少壯之時 此其仁靜之效發於外者 而宜乎享耄耋之壽者歟 君八十九十而康健猶如此 其將一百二百而永沐恩波 壽益高而秩益尊也 豈不休哉 宴之日 我仲父貞庵先生臨與焉 會者十數人 余又略敍此以爲壽 時甲戌閏四月下浣 宗人 百奮 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