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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235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676년 김수항 간찰 / 金壽恒 簡札
- ㆍ발급자
-
김수항(金壽恒, 1626~168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현징(玄徵, 1629~1702)
원문내용 玄徵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676년 8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辰 八月 十九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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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2.6 × 21.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문서는 병진년(1676) 8월 19일에 김수항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스스로 ‘纍人’으로 표기하여 당시 유배지에서 지내는 상황임을 나타내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자료는 형태상 234번 문서부터 244번 문서까지 일괄적으로 모두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의 발급 문건들이다. 여러 폭의 종이를 이어 붙인 지면에 각 편의 서간문을 베껴 간찰첩의 형태로 제책했던 것이 후에 떨어져 나온 낙장들로 보인다. 이 가운데 234, 235, 236, 238, 239, 241번 문서는 서간문으로서 수신자는 죽림정(竹林亭) 현징(玄徵, 1629~1702)이고, 240번과 241번 문서의 일부는 현징 일가의 미상인에게 발급된 서간문이다. 237번 문서는 김수항이 지은 옥책문이고, 242, 243, 244번 문서는 김수항의 아들에게 발급한 서간문으로서, 각각 김창집(金昌集), 김창업(金昌業), 김창협(金昌協)이 수신자이다. 특히 241번 문서에 별도로 기록된 수신자에 대한 언급이나 피봉 기록이 문두에 적힌 점, 아들에게 발급한 서간문의 첫머리에 모두 “與-”, “寄-”와 같은 형식의 제목이 붙어있다는 점 등으로 보면 김수항이 발급한 간찰 원본이라기보다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김수항의 간찰 또는 서간문을 저자의 필체로 모사한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문서는 병진년(1676) 8월 19일에 김수항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스스로 ‘纍人’으로 표기하여 당시 유배지에서 지내는 상황임을 나타내었다. 문두에 발급자 정보로 ‘拜謝狀上(절하고 답장 올림)’, 수급자 정보로 ‘戚侍/玄進士 靜史’가 묵서되어 있는데, 이는 피봉 기록을 옮겨 베껴둔 것으로 보인다. 수신자 현징은 1660년에 진사시에 입격한 이력이 있으므로 ‘玄進士’라고 기록할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가 오는 날씨에 문득 상대의 서찰을 받고 기거가 맑고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평소보다 더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은 국상이 지났다고 듣고는 울부짖고 무너지는 마음이 마치 처음 국상이 난 때와 같지만, 현재 임금께서 명을 환수해 주기를 무척 기다리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아침저녁으로 두려워 위축되어 지낸다고 했다. 상대가 보내준 좋은 막걸리와 안주는 자신을 친애하는 정이 담긴 선물이라고 하면서, 한 잔 맛보니 더욱 풍미가 좋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언급된 ‘返汗’은 보통 임금이 내린 명을 다시 거두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발급자에게 내려진 벌을 환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급자는 1675년 2월에 좌의정이 되었고 6월에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었는데, 같은 해 7월에 응지진언(應旨進言) 차자를 올려 종실인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 복평군(福平君) 이연(李㮒)의 처벌을 주장하고 남인을 배척하였다가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이 간찰이 발급된 해에의 7월에 특별히 석방하라는 명이 내려졌지만 명을 환수 해 달라는 승정원과 대간들의 계로 인해 석방의 명이 환수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서간문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발급된 것으로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근황과 사건의 실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김수항은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부친은 운수(雲水) 김광찬(金光燦, 1597~1668)이고,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다. 형으로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 퇴우당(退憂堂) 김수흥(金壽興, 1626~1690)이 있고, 아들로는 이른바 ‘육창(六昌)’으로 유명한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1648~1722)‧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1721)‧포음(圃陰) 김창즙(金昌緝, 1662~1713)‧택재(澤齋) 김창립(金昌立, 1666~1683)이 있다. 그는 1646년(인조 24) 병술 식년시 진사 1등 1위[壯元]로 소과에 입격하였고, 1651년(효종 2) 신묘 알성시 갑과 1위[壯元]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656년(효종 7) 병신 중시(重試)에서 을과 1위[亞元]로 급제하기도 했다. 삼사의 관원과 청요직 등을 거쳐 예조판서, 영의정까지 두루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문곡집』이 있다.
수신자 현징은 자는 사휴(士休), 호는 죽림정(竹林亭),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부친은 현진후(玄振後)이고, 아우로 현미(玄微)가 있다. 아들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인 삼벽당(三碧堂) 현약호(玄若昊, 1659~1709)로 생부는 현미이다. 전라도 영암 월출산의 서쪽 구림리(鳩林里)에 세거하였다. 1660년(현종 1) 경자 증광시 진사 2등 20위로 소과에 입격한 전력이 있다. 그와 관련한 정보로 이재(李縡)의 『도암집(陶菴集)』 권41에 실린 「참봉현공묘지(參奉玄公墓誌)」, 김수항의 『문곡집』에 실린 「죽림정기(竹林亭記)」나 죽림정 관련 시, 김창협의 『농암집』, 김창흡(金昌翕)의 『삼연집(三淵集)』 등에 실린 죽림정 관련 다수의 시를 참조할 수 있다.
- · 『肅宗實錄』 『承政院日記』 金壽恒, 『文谷集』 李縡, 『陶菴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戚侍拜謝狀上/玄進士 靜史
雨中忽辱手札 承認啓處淸迪 欣荷倍常 僕 聞過國祥 號隕若新 而苦竢返汗之音 迄未有聞 日夕悚蹙難狀耳 芳醪雋鮮 親愛情貺 卽嘗一盞 尤謝風味之薰人也 自餘不旣 伏惟下亮 謹謝狀上 丙辰 八月 十九日 纍人 壽恒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