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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233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5년 허병률 간찰 / 許秉律 簡札
- ㆍ발급자
-
허병률(許秉律, 1857~1918)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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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4월 2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巳 四月 二十一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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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4 × 40.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사년(1905) 4월 21일에 허병률(許秉律, 1857~191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을사년(1905) 4월 21일에 허병률(許秉律, 1857~191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査弟’로 표기하여 사돈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고, 배접된 상태로 현전하여 원래 간찰첩 등의 형태로 제책되어 있던 것의 낙장으로 보인다.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를 우러러 보는 마음은 예전부터 부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또 혼인의 정의로 관계가 새로워졌다고 하면서, 성한이 돌아온 이때에 행차는 잘 도착했는지, 형제분들과의 생활하시는 체후가 연일 신의 보위로 화락하신지, 대소절도 한결같이 큰 복을 받으시는지 물었다. 사돈인 자신은 병들어 지내는 상황은 전날과 같다고 하였다. 사위는 보면 볼수록 더욱 기특하니 비록 병중에 있더라도 걱정과 어려움은 풀리겠지만 속기에 구애되어 선뜻 이별하니 서운하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발급자의 주변에서 일어난 근황이나 혼례와 관련한 당시의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허병률은 자는 화선(和宣), 호는 영계(潁溪),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부친은 허장(許仗)이고, 후산(后山) 허유(許愈, 1833~1904)의 문인이다. 본문의 내용으로 보면 당시 발급자 측이 딸을 시집보낸 것으로 보인다. 송호곤(宋鎬坤)의 『정산집(靖山集)』 권15에 실린 「영계허공행장(潁溪許公行狀)」을 참조하면 그는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용효(容孝), 용기(容璂), 용태(容泰), 용준(容俊)이고 딸은 각각 이태호(李泰浩), 윤복식(尹馥植)에게 시집 간 것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수신자는 이태호나 윤복식 둘 중 하나의 부친이 될 수 있지만 미상이다. 발급자에 관한 정보로 장석영(張錫英)의 『회당집(晦堂集)』 권38에 실린 「처사허공화선묘갈명(處士許公和宣墓碣銘)」, 곽종석(郭鍾錫)의 『면우집(俛宇集)』 권9에 실린 「만허화선[병률](挽許和宣[秉律])」 및 이승희(李承熙)의 『대계집(大溪集)』에 실린 각종 서간문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이들은 후산 허유와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등과 함께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학맥을 잇는 한주학파 계열의 ‘주문팔현(洲門八賢)’으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제목 없음
景仰昔非不足 今又姻誼維新 伏惟漢回 行李利稅 而棣床啓居候 連衛湛穆 大少節宣 一直鴻休否 伏溸區區之至 査弟 病狀一如昨日 苦悶苦悶 倩郞看看益奇 雖在病中 憂難捨釋 而拘俗旋別 悵恨悵恨 餘病喘倩草 不備書禮 乙巳 四月 二十一日 査弟 許秉律 二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