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D004_01_A00220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시문류-시(詩)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20년 최종주 시 / 崔宗周 簡札
- ㆍ발급자
-
최종주(崔宗周, 1683~1737)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20년 4월 ?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庚子 淸和節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5.1 × 47.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경자년(1720)에 청화절(淸和節, 음력 4월)에 최종주(崔宗周, 1683~1737)가 작성‧발급한 시고(詩稿)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경자년(1720)에 청화절(淸和節, 음력 4월)에 최종주(崔宗周, 1683~1737)가 작성‧발급한 시고(詩稿)이다. 원폭은 푸른색 계선이 인쇄된 시전지에 작성되었고, 배접된 상태로 현전하는데 원래 시첩 또는 간찰첩 등의 형태로 제책되어 있던 것의 낙장으로 보인다. 서두에 간략한 서문이 있는데 내용은 “오계의 거사 고경관이 내가 있는 동각을 방문하였다가 이야기가 풍영정의 승경에 관한 데에 이르렀다. 이어서 현판에 적힌 운으로 도중에 화답을 요청하여 짓는다.[梧溪高居士景觀, 訪余東閣, 語及風詠亭之勝. 仍以板上韻, 見道次而要和.]”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가 화답시이므로 수취자는 서문에 기록된 ‘고경관(高景觀)’이라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경관’은 해당 인물의 자로 추정된다. 시는 전반적으로 7언 율구로 이루어져 있다. 운자는 ‘休’‧‘愁’‧‘洲’‧‘留’‧‘秋’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三旬餘得簿書休 한 달 남짓 공무 끝에 여가를 얻어
擬上高亭一散愁 높은 정자에 올라 시름을 풀려 하네
芳草桃花聞舊路 방초와 복사꽃이 옛길을 알려 주고
落霞飛鶩認長洲 노을 속 나는 오리 긴 물가를 알아보네
名匠未到君能說 명장은 못 이르러도 그대와 만담 나눌 수 있고
勝賞諧心我且留 승경을 즐기며 마음 맞으니 나는 장차 머무르리
千古詠歸同此趣 천고부터 귀향 시는 이 지취와 같노라니
正宜春暮不宜秋 늦봄이 제격이지 가을은 맞지 않네
작자의 필명으로 기록된 ‘문길(文吉)’은 자봉(紫峯) 최종주(崔宗周)의 자로 추정된다.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그는 1719년(숙종 45) 7월 24일에 장성부사(長城府使)에 제수되어 1721년(경종 1)에 상척을 당한 이후 고을을 다스리는데 해이해졌다는 등의 이유로 추고를 받은 기록 외에 1723년 5월 1일 종부시정에 제수되기 전까지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면 이 문서가 발급된 해에는 장성부사에 재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문에 언급된 ‘동각(東閣)’ 역시 지방 관아에 딸린 건물로 보통 지방관을 가리키기도 한다. 서문에서 언급된 풍영정(風詠亭)은 현재 전라도 광주 광산구 신창동 소재의 정자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장성군과 맞닿은 지역으로 작자의 당시 동선을 유추 해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지방관 생활을 하던 도중에 벗이 찾아와 함께 풍영정의 승경을 감상하며 자신의 감회를 표현한 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작자의 문학적 기풍을 엿볼 수 있다.
발급자 최종주는 본관은 삭녕(朔寧), 부친은 최경수(崔慶壽)이다. 1705년(숙종 31) 을유 식년시 갑과 2위[亞元]로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 설서, 지평, 장성부사, 승지, 춘천부사, 경주부윤, 남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 · 『承政院日記』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梧溪高居士景觀 訪余東閣 語及風詠亭之勝 仍以板上韻 見道次而要和
三旬餘得簿書休 擬上高亭一散愁 芳草桃花聞舊路 落霞飛鶩認長洲 名匠未到君能說 勝賞諧心我且留 千古詠歸同此趣 正宜春暮不宜秋 庚子 淸和節 文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