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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에 삼종제(三從弟) 조병승(趙秉升, 1844~?)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三從弟’라고 하여 8촌 종반관계이면서 아우임을 나타내었다. 원폭의 좌측에 기재된 발급자의 성명 옆에 후대에 추기한 것으로 보이는 ‘趙參判’이 묵서되어 있어서 발급자의 관력을 알 수 있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고, 배접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가운데에 접힌 선만으로 추정하면 원래 간찰첩 등의 형태로 제책되어 있던 것의 낙장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사이 기체후는 손상이 없는지 안부를 물은 뒤, 상대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가 소시(召試)에 참방(參榜)하게 된 일은 매우 후련한 일이지만 한 몸에 두 가지 일을 맡게 된 것은 보탬 없이 수고롭기만 할 것이므로 도리어 염려된다고 했다. 삼종제인 자신은 객지에서 지내는 형편은 우선 예전대로 지내고 있고, 고향 소식을 근래에 들었으므로 이 외에 딱히 드릴 말씀은 없다고 했다. 끝내 군직을 받아 내일 공역을 수행하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여 자신의 모습이 그야말로 이른바 낮에 돌아다니는 도깨비 같은 형상과도 같으니 한 번 웃을 만하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주변에서 일어난 근황이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조병승은 자는 치일(稚日), 본관은 풍양(豐壤)이고, 부친은 조우영(趙禹永), 생부는 조규영(趙揆永)이며, 생가 형으로 조병리(趙秉履), 조병익(趙秉益)이 있다. 1876년(고종 13) 병자 식년시 진사 3등 20위로 소과에 입격한 뒤 1877년(고종 17) 추도기과(秋到記科) 제술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전시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받은 뒤, 1878년(고종 15) 무인 정시 병과 6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가주서에 제수되고, 같은 해에 한림소시(翰林召試)에 들었다. 검열, 정언, 수찬, 장령, 부응교, 진천현감, 부교리, 승지, 예조참의, 공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 · 『承政院日記』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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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比來 氣候無損 伏慕區區 允侄之得參召試 誠甚豁然 一身兩役 得無益勞乎 旋切爲念 三弟 客狀姑依 鄕信近聞 是外何達 竟以軍啣 明日公役 似難圖免 眞所謂晝出魍魎 亦一可笑也 餘姑不備達 是日 三從弟 秉升【趙參判】 上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