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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208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시문류-시(詩)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조태억 시 / 趙泰億 詩
- ㆍ발급자
-
조태억(趙泰億, 1765~1728)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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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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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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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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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5 × 47.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에 조태억(趙泰億, 1765~1728)이 죽은 이를 애도하고자 작성‧발급한 만사(輓詞)이다. 연도나 수취인은 미상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미상년에 조태억(趙泰億, 1765~1728)이 죽은 이를 애도하고자 작성‧발급한 만사(輓詞)이다. 연도나 수취인은 미상이다. 원폭은 배접한 형태로 현전하는데, 원래 시첩 또는 간찰첩 등의 형태로 제책되어 있던 것의 낙장으로 보인다. 시는 전반적으로 7언 율시로 이루어져 있다. 운자는 ‘墳’‧‘君’‧‘聞’‧‘分’‧‘雲’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操文憶酹霽翁墳 제옹의 무덤에서 제문 들고 술을 붓노라니
傾蓋當時一識君 잠시 만나 인연 맺은 그 당시가 기억나네
家世典刑知不忝 유서 깊은 가문의 전형 지켜 부끄럽지 않았고
朝廷收錄竟無聞 조정에 오를 만도 했지만 끝내 알려지지 않았네
向來消息書猶闊 전부터 소식 왕래 서찰조차 드물더니
今日幽明路忽分 오늘은 유명 간의 길이 문득 갈리누나
惆愴生芻阻蒿里 슬프다, 변변찮은 제수조차 올릴 길이 막히니
可堪揮涕望南雲 눈물을 훔치며 남쪽 구름만 바라볼 따름이네
본문에서 언급된 ‘제옹(霽翁)’은 망자의 아호나 당호로 추정된다. ‘경개(傾蓋)’는 『사기(史記)』 「추양열전(鄒陽列傳)」에 “머리가 세도록 오래된 관계도 새로울 수 있고, 수레 덮개를 기울여 잠시 만난 관계도 오랜 인연과 같을 수 있다.[白頭如新, 傾蓋如故.]”라고 한 데 온 말로 ‘잠깐 만난 사이라도 오랜 벗처럼 마음을 통한 사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생추(生芻)’는 『후한서(後漢書)』 「서치열전(徐穉列傳)」, 『시경』 「백구(白駒)」에 전거가 있는 말로 원래 의미는 말을 먹이는 여물을 가리키지만 변변찮은 제수(祭需)를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 오랜 벗과 같은 상대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유서 깊은 가문의 법도와 모범을 지키며 살았지만 관직에 등용되지 못했던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다음으로, 서로 격조하여 소식이 드물다가 갑자기 받게 된 소식은 부고였음을 언급하며 거리가 멀어 빈소로 달려갈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과 애도하는 심경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망자를 애도하는 작자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발급자 조태억은 자는 대년(大年), 호는 겸재(謙齋)‧태록당(胎祿堂),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부친은 태촌(苔村) 조가석(趙嘉錫, 1634~1681)이다.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의 문인이다. 1693년(숙종 19) 계유 식년시 진사 3등(三等) 54위로 소과에 입격하고, 1702년(숙종 28) 임오 식년시 을과 4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가주서를 시작으로 검열, 대교, 전적, 문학, 지평, 정언, 북평사 등을 지냈고, 1707년(숙종 33) 정해 중시(重試) 병과 3위로 급제하기도 했다. 이후 삼사와 전랑 등 청요직을 거쳐 승지, 대사간, 대사성, 이조참의, 양주목사, 경상감사,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참판,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겸재집』이 있다.
- · 『承政院日記』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操文憶酹霽翁墳 傾蓋當時一識君 家世典刑知不忝 朝廷收錄竟無聞 向來消息書猶闊 今日幽明路忽分 惆愴生芻阻蒿里 可堪揮涕望南雲 楊州後人 趙泰億 哭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