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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191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3년 임헌회 간찰 / 任憲晦 簡札
- ㆍ발급자
-
임헌회(任憲晦, 1811~1876)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송문우(宋文右)
원문내용 宋斯文【亨和甫】文右 入納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 馬輪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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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9월 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酉重陽前夕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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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3.9 × 43.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73년 중양절(重陽節) 전날에 기하(記下) 임헌회(任憲晦, 1811~1876)가 송문우(宋文右)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73년 중양절(重陽節) 전날에 기하(記下) 임헌회(任憲晦, 1811~1876)가 송문우(宋文右)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피봉에는 마륜상노후장(馬輪上蘆候狀), 송사문 형화보 문우 입납(宋斯文【亨和甫】文右)라 기록되어 있어, 마륜(馬輪)에서 올린 안부 편지이며 수신자는 송형화(宋亨和)이다. 간찰은 상례 이후의 정서, 인편을 통한 서신 왕래, 노쇠와 병환, 학문적 근황을 함께 나누던 교유 서간이다.
임헌회는 본관이 풍천(豊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희양재(希陽齋)이다. 1858년 효릉 참봉, 장령, 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865년 만동묘 제향 폐지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제향을 복구하게 하였으며, 경학과 성리학에 깊은 조예를 지닌 낙론의 대표 학자로 이이와 송시열의 학통을 계승하여 전우에게 전수하였다. 저서로 『고산문집(鼓山文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선향(仙鄕)으로 가는 인편이 있는데, 서로 아는 여러 어진 이들은 모두 편지를 보냈으나 수신자만 유독 편지가 없었지만, 우연히 인편을 놓쳤기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 헤아린다. 중반부에는 늦가을에 수신자의 조용한 기거가 맑고 넉넉하며, 성대한 학업이 더욱 돈독한지 묻고, 우러러 그리워하는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이어서 자신은 쇠병(衰病)이 갈수록 심해져 많이 눕고 적게 일어나니, 이런 상태로 어찌 오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겠느냐고 탄식한다. 그러나 이 또한 다할 것은 다하고 항상된 이치로 돌아가는 일이니 어찌하겠느냐고 스스로 달랜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서로 떨어진 거리가 멀어 다시 함께 만나 회포를 펼칠 길이 없으므로, 종이를 대하자 곧 서글픈 마음이 든다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제목 없음
隙駟不停 冠裳就吉 可想心目之瞿如新也 卽有仙鄕便 相知僉賢皆有書 而座下獨無之 豈座下之忘我 恐偶失便耳 伏惟暮商 靜候淸裕 盛課益篤未 仰溸區區 不容名言 記下 衰病轉甚 多臥少起 如是者 何能久視乎 是亦晝夜常理 奈何奈何 相去落落 無偕更展 臨紙旋悒 力疾略玆 請安 餘姑不宣狀禮
癸酉重陽前夕 記下 任熏晦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