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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180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1년 이세용 간찰 / 李世用 簡札
- ㆍ발급자
-
이세용(李世用, 1845~?)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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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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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3월 2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辛未三月念六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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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2 × 46.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71년 3월 26일에 이세용(李世用, 1845~?)이 모인에게 보낸 청탁성 편지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71년 3월 26일에 이세용(李世用, 1845~?)이 모인에게 보낸 청탁성 편지이다. 간찰은 농사철 정무의 번거로움에 대한 염려, 발신자가 겪은 영해(寧海)의 변고, 화성(化城) 주동(舟洞)에 사는 김중현(金仲賢)의 채무 관계, 김경보(金敬甫)에게서 받아야 할 500여 냥의 독촉 요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사대부 사이에서 안부 문안과 함께 채무 징수, 지방관의 독촉, 하인과 본가 사이의 경제 관계가 사적 서신을 통해 전달되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근래 가뭄 속에 수신자가 관아 일을 보며 체후를 잘 보전하고 있는지 묻고, 농사철의 여러 업무가 크게 번거로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는지 염려한다. 이어서 자신은 그사이 영해의 변고를 당하여 아프고 허전한 마음이 비할 데 없지만, 다행히 부모를 모시는 일과 식구들은 모두 그대로 지내고 있다고 전한다. 중반부에는 수신자의 관할 아래 화성 주동에 사는 김중현은 곧 심암 조 상공 댁의 하인인데, 조 상공 댁에서 받을 돈이 있었고 본 읍의 김경보와 함께 이익을 도모하면서 김경보에게 받아야 할 빚이 500여 냥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를 오래 끌며 갚지 않아 본가에서 납부해야 할 돈을 거두어 처리하는 일도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그가 소장을 올리기를 기다려 며칠 안에 독촉하여 받아 내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렇게 하여 본가가 손실을 보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고, 또한 양쪽에 체면과 빛이 나게 해 주면 어떻겠느냐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제목 없음
久阻勢也 悵耿則切矣 伏問比旱 視篆令體節萬毖 農時凡務 不至大央掌否 仰禱仰禱 記下 間遭寧海之變 痛廓無比 惟幸省率俱依耳 就治下化城舟洞居金仲賢 卽心菴趙相公宅下人也 而有所得錢於趙相家 與本邑金敬甫 同爲興利 有所捧債於敬甫者 爲五百餘兩 而延拖未報 則本家所納收刷 亦難容易 故謹玆仰告 待其呈訴 不日督捧 幸使本家無至見失之地 且生兩地生光 如何如何 若非緊切 則如是委告耶 餘不備上
辛未三月念六日 記下 李世用 再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