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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154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24년 이재 간찰 / 李縡 簡札
- ㆍ발급자
-
이재(李縡, 1680~1746)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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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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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년 9월 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辰九月四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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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5.2 × 4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724년 9월 4일에 이재(李縡, 1680~1746)가 모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간찰은 국상(國喪)에 대한 애통, 수신자의 안부, 자신의 상사(祥事) 이후의 슬픔, 여동생의 혼사(婚事), 김 애(金哀) 집안과의 혼의 조정 문제, 권우(權友)의 편지 반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724년 9월 4일에 이재(李縡, 1680~1746)가 모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간찰은 국상(國喪)에 대한 애통, 수신자의 안부, 자신의 상사(祥事) 이후의 슬픔, 여동생의 혼사(婚事), 김 애(金哀) 집안과의 혼의 조정 문제, 권우(權友)의 편지 반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사대부가 국상과 사가의 상례(喪禮)를 겪는 가운데 혼례 문제를 조율하던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국장(國塟) 이후에도 혼사를 다시 주선할 여지가 있는지를 묻고, 상대 집안의 의향을 재확인해 달라고 한 대목은 상례와 혼례의 시기 조정, 가문 간 혼의 교섭의 실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이재는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陶菴)·한천(寒泉)이다. 170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 검열, 함경도 관찰사, 대사헌,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노론의 대표적 학자로서 『가례원류』 편찬 문제와 신임사화, 정미환국 등 정국 변화 속에서 노론의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는 낙론(洛論)의 입장에서 활동하며 성리학과 예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 『도암집』, 『사례편람』 등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경종(景宗)의 국상으로 인해 울부짖고 무너지는 슬픔이 끝없다고 하였다. 이어 서리 내리는 차가운 계절에 조섭(調攝)이 더욱 평안한지를 묻었다. 중반부에는 자신이 근래 상사(祥事)를 지내고 돌아왔으나, 슬프고 그리운 마음은 미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며, 부모를 모시고 식구들을 거느리는 형편은 다행히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전한다. 이어서 여동생의 혼사는 여러 사정상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하였다. 내년에 김 아무개가 충분히 움직여 성사시킬 수 있다고 말했으나, 일이 이처럼 어긋나고 서로 맞지 않게 되었으니 매우 낭패가 크다고 하였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그 집안에서 만약 계획을 고친다면 국장 이후에도 오히려 남은 날이 있으니, 다시 주선할 수 있는지 더 자세히 살펴 확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한다. 권(權) 친구의 편지는 돌려 보낸다고 하였고, 나머지는 작은 종이에 적었다고 하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제목 없음
國哀號隕罔極 向復雖承少逾 一念猶如懸矣 惠滋匝月始至 心畵如昔 驚喜不可狀 霜冷調攝增安 弟 頃過祥事而歸 悲慕無及 侍率幸粗遣爾 妹昏凡百 事勢決不可過耳 明歲金哀謂兄足以動得 而緯繣【緯繣[楚辭, 暌違也]】如此 狼狽大矣 其家如改圖 則國塟後 猶有餘日 或更可以周旋否 更爲審確爲幸 權友書還呈耳 餘在小紙 不宣 只望加愼 慰此遠懷 伏惟兄照
甲辰九月四日 弟 服人 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