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D004_01_A00129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유운우 간찰 / 柳雲羽 簡札
- ㆍ발급자
-
유운우(柳雲羽, 173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8월 1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黃山纍丞 謝狀. 저자가 황산역승에 있었던 때.본문 八月 十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5.3 × 40.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 8월 12일에 종말(宗末) 유운우(柳雲羽, 1730~?)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미상년 8월 12일에 종말(宗末) 유운우(柳雲羽, 1730~?)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纍宗末’이라고 표현하여 수신자와는 같은 문중(진주유씨) 출신의 종친 관계를 나타내었다. ‘纍’는 ‘매여 있다’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유배를 간 죄인이 자칭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나 여기에서는 지방관 생활을 하는 상태를 표현한 말로 보인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黃山纍丞 謝狀’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황산의 역승에 매여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또한 ‘柳進士宅 回納’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유(柳)씨 성을 가진 진사시에 입격한 이력이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지만 이 정보만으로는 특정 지을 수 없다. 상단 봉함처에 답인된 인장은 붉은 색 방형으로 인문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황산찰방의 관인일 가능성이 크다. 하단 합금처에는 발급자의 수결과 함께 “삼가 봉함”이라는 의미의 ‘謹封’으로 추정되는 결구(決句)가 적혀있다. 이러한 봉함인 또는 결구‧수결 등은 일반적으로 서찰의 보안이나 신표의 기능을 한다. 피봉의 앞면에는 별다른 묵서는 없으나 후대에 추기한 것으로 보이는 발급자 정보가 펜글씨로 적혀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별한 뒤의 회포가 끊임없이 드는 것은 강 건너 멀리 계시는 상대와 서로 통할 것이라고 하였다. 단계의 종인이 가을 더위를 무릅쓰고 멀리서 찾아와 주어 그를 통해 상대의 소식을 들었고, 또 오늘 뜻밖에 어린 종이 와서 상대의 편지를 전해 받았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서늘한 기운이 잠깐씩 생겨나는 이때에 기거생활이 연일 건승하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객지에서의 시름이 갈수록 더욱 견디기 어려운데, 집안 소식도 여러 달 듣지 못하니 고민한들 어찌하겠냐고 했다. 그간 감사의 순로에 부마(夫馬)를 대는 일로 분주하고 골몰하며 날을 보내고 있는 연고로 편지를 쓰지 못했다고 했다. 보내주신 두 편의 시와 두 개의 부채는 후의에 깊이 감사하지만 바로 화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진주 행차는 보름에 출발할 예정이니 곧장 상대에게 갈 계획이라고 했다. 추록에는, 상대의 편지를 가지고 온 인편이 밖에 서서 재촉하여 7절만 서둘러 지어 올린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근황이나 시대상황, 글이나 물품을 주고받던 풍습이나 관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순로부마(巡路夫馬)’는 경상도 관찰사의 순행이 황산도와 인근이 소속된 양산지역을 경유하는 경우 이에 대한 말과 마부를 제공하고 지공하는 일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피봉에서 언급된 ‘黃山纍丞’에서 ‘黃山’은 경상도 지역의 양산, 밀양, 기장, 언양, 경주, 울산, 동래 등의 지역에 걸쳐 설치된 역도인 황산도(黃山道, 양산 소재)를 가리킨다. 황산역을 중심으로 속역으로 잉포(仍浦), 노곡(奴谷), 윤산(輪山), 위천(渭川), 덕천(德泉), 굴화(堀火), 간곡(肝谷), 하월(何月), 소산(蘇山), 휴산(休山), 신명(新明)이 있었다. 『경국대전』에는 종9품 역승(驛丞)이 파견되는 곳이었는데, 『속대전』에 이르면 종6품 찰방(察訪)이 파견되는 곳으로 승격되었다. 『승정원일기』를 참조하면, 유운우는 1787년(정조 11) 6월 6일에 황산찰방 제수되었음이 확인된다. 당시 그는 헌납에 제수되자마자 패초(牌招)를 어겨 파직전지가 봉입되었던 것을 정조가 추고만 하게 한 뒤 황산찰방의 외직에 임명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의 호칭에 ‘纍’를 쓴 것은 황산찰방의 제수를 실질적으로 유배나 마찬가지로 보아 ‘유배죄인’의 의미로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丞’은 자신이 제수된 찰방에 대한 겸사이거나 또는 역도를 관리하는 관직의 이칭으로 기존 명칭이 굳어져 투식으로 그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영조 대 『속대전』 반포 이후에도 간찰 등 고문헌에서 찰방 대신 ‘郵局’이나 ‘驛丞’ 류의 용어를 혼용하여 쓴 사례가 종종 있다.
발급자 유운우는 자는 봉지(鳳之),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부친은 유서오(柳叙五)이고, 형제로 유운익(柳雲翼)이 있다. 1756년(영조 32) 병자 식년시 진사 1등 4위로 소과에 입격하고, 1771년(영조 47) 신묘 식년시 을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가주서를 시작으로 검열, 전적, 병조좌랑, 지평, 정언, 이조좌랑, 문천군수(文川郡守), 장령, 자인현감(慈仁縣監), 헌납, 황산찰방, 사간, 집의,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 · 『經國大典』 『續大典』 『承政院日記』 『輿地圖書』 김효경,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柳進士宅 回納/ 黃山纍丞 謝狀/ [封緘印; 朱文方印]/ [手決]謹封/ 【柳雲羽 晉州人 英祖進士之■下 承世 ■】
別後懷緖 無日無時 一点犀渡江而去 丹溪宗人 冒秋炎遠訪 兼過郡邊 仍悉聲息 卽此意外 小奚來傳惠狀 忙披如對 矧審乍凉 起居連勝 仰慰十分 纍宗末 客愁去益難堪 家信閱月未得 雖悶奈何 其間以巡路夫馬 擾汨度日 以此之故 一未書耳 想必有無情矣 惠寄兩詩兩竹 深領厚誼 僕僕不容口 而卽當奉和 無路搆成 可歎可歎 晉州之行 望日當發 直進軒下計耳 餘在奉 姑不宣 八月 十二日 纍宗末 雲羽 頓 來人立促 故七絶走草以上耳 來人給三葉 爲午頓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