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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096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4년 성휘영 성대영 간찰 / 成彙永 成大永 簡札
- ㆍ발급자
-
성휘영(成彙永)
성대영(成大永, 182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64년 6월 1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子六月十七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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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0.4 × 32.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64년 6월 17일에 종말(宗末) 성휘영(成彙永)·성대영(成大永, 1829~?) 등이 수신자에게 보낸 문중 관련 편지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64년 6월 17일에 종말(宗末) 성휘영(成彙永)·성대영(成大永, 1829~?) 등이 수신자에게 보낸 문중 관련 편지이다. 간찰은 문중 묘소 정비를 위해 각 파에서 파전(派錢)을 균등하게 배정하고, 통문(通文)을 보내 비용을 거두어 공사를 진행하던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민요(民擾)로 공사가 지연되고, 역소(役所)의 부채가 산처럼 쌓였으며, 기호(畿湖) 지역 파전까지 수합해야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한 대목은 조선 후기 문중 사업의 재정 운영과 종중 간 협력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성대영은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하산(夏山)·경로(景老)이다. 1885년 문과에 급제한 뒤 동부승지, 사간원 대사간, 이조 참의, 성균관 대사성, 궁내부 특진관, 부묘도감 제조 등을 지내며 대한제국기까지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무더운 여름에 수신자의 기거가 평안한지, 여러 종친 댁의 형편도 모두 고른지 묻고, 멀리서 축원하는 마음을 전한다. 자신은 각기 변변치 못한 형편대로 지내고 있으나, 지나간 난리의 잿더미 같은 상황은 차마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중반부에는 근래에는 다행히 점차 안정되어 가지만, 십세(十世)의 문헌(文獻)이 모두 사라져 증거할 만한 것이 없으니 갈수록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어서 성주 어곡 묘소의 석역 문제를 본격적으로 언급한다. 몇 해 전 발문(發文)할 때 수신자가 마침 논의에 참여하여 그 단서와 형편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이후 서울과 지방의 종회(宗會)에서 신중히 의논하고, 원근 각 파의 파전(派錢)을 고르게 배정하여 그곳에서 일을 도모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여러 파의 첫 배정금과 추가 배정금을 거두는 대로 사용했으나, 일이 워낙 크고 비용이 많이 들어 마치 화로 위의 눈처럼 금세 사라졌다고 하며, 이 때문에 역소의 부채가 산처럼 쌓이고 공사를 마칠 기약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수신자 측의 파전 문제를 거듭 말한다. 귀중(貴中)의 파전은 통문을 오룡동(五龍洞)에 부쳐 보냈고, 곧 전달되었다고 들었으니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찌 한 번의 답도 없고 배정된 돈도 갖추어 보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어서 올가을 시험소가 마침 성주 고을에 설치될 예정이므로, 자신들이 내려가 시험을 본 뒤 묘소에 가서 다시 공사를 시작하고 글자를 새기는 일을 진행하려 한다고 밝힌다. 이에 수신자 쪽 파전 10냥을 다음 달 초순까지 반드시 갖추어 보내어 제때 쓰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이미 공사가 절반쯤 진행된 상황에서 파전이 걷히지 않아 물러나 공사를 마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가겠느냐고 반문한다. 만약 다음 초순 뒤에도 돈이 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사람을 보내 직접 찾아오게 할 계획이라고 하며, 이 점을 헤아려 달라며 편지를 마친다.
제목 없음
年前歷枉暫拜 依如一夢 有時馳想 秖切百世一室之懷而已 伏惟蒸炎 靜履起居候衛重 僉宗宅都節均迪 區區仰溯 無任遠祝 宗末等 各依劣狀 而過境劫灰 尙欲無言 近幸漸次定頓 而但十世文獻 蕩無可徵 去益難堪 憤死奈何 第星州於谷墓所石役事 年前發文時 執事適臨議 確備悉端緖者也 間有京鄕之宗會鄭重 遠邇之派錢均排 謀所以其地敦事矣 不幸有民擾之猖狂 拖過歲月 纔於昨秋始役 至于諸派 初排加排 隨斂隨用 有浩大事役 便同爐雪 所以役所之負債山積 訖工無期 還覺擔事着手之爲悔也 貴中派錢 通文付送於五龍洞 聞卽信傳云 想應俯悉而 何無一番回敎 排錢亦何不備送耶 此實一體殫力之地也 而聲難相資 悶鬱悶鬱 今秋試所 適在星邑 擬以下去 視光後 因往墓下 更爲始役磨刻 而有物可圖 嶺派所排 已盡收用 勢將亟期 收合畿湖錢 可以竣役 千萬俯諒 貴派錢十兩 以來月初旬 期於備送 以爲趁用 切仰切仰 事旣半工 若以派錢之未收 退却不竣 則責將誰歸 伏想諒悉耳 若待來旬後不來 則自此當委伻 覓來計 亦以此下諒 如何如何 餘忙不備禮 京鄕宗會所通文便忙 不得付送 待當傳之耳
甲子六月十七日 宗末 彙永 大永 等 拜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