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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091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4년 서경보 간찰 / 徐耕輔 簡札
- ㆍ발급자
-
서경보(徐耕輔, 1771~183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34년 7월 2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午七月卄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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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8 × 53.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34년 7월 20일에 서경보(徐耕輔, 1771~1839)가 수신자에게 올린 편지이다. 발신자는 자신을 복제라 칭하고 있어 상중(喪中)에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34년 7월 20일에 서경보(徐耕輔, 1771~1839)가 수신자에게 올린 편지이다. 발신자는 자신을 복제라 칭하고 있어 상중(喪中)에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간찰은 안부 문안, 자신의 답답한 처지, 별도로 올린 소록(小錄)의 사안, 이영(李令) 집안의 일에 대한 처리 요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발신자가 이 영 집안의 일을 두고, 당사자가 정소(呈訴)하면 엄격히 제사(題辭)를 내려 추급(推給)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 대목은 조선 후기 사대부 사이에서 송사(訟事)나 청원 사안이 사적 서간과 별지 기록을 통해 관아의 판단으로 연결되던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서경보는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임세(任世), 호는 묘옹(卯翁)이다. 1825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대사성, 이조 참의, 전라도 관찰사, 형조 판서,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함경도 관찰사 재임 중 영흥부 선원전의 태조 어진 훼손 사건으로 사직하였다가 복직되어 공조 판서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지난번 수신자가 보내준 답장이 도착했으나 다시 회답할 인편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답장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수신자의 체후(體候)가 평안한지를 묻고, 그리움과 염려의 뜻을 함께 전한다.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나, 괴로운 직임이나 부담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어 이를 답답하게 여기고 있다고 토로한다. 중반부에는 이번에 올리는 소록은 곧 이 영 집안의 일이라고 밝히며 그가 정소(呈訴)하기를 기다렸다가 제사(題辭)를 내려 추급(推給)하게 하여 낭패를 보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한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이 영의 아우도 이 일로 수신자의 만객(萬客)에게 편지를 보내 부탁했다고 하며, 한 번 판결하여 두 집안의 일을 모두 완결한다면 어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제목 없음
向來下復 從轉褫付來 更無回便 故尙未仰答矣 旱餘得雨 涼意乍動 不審此際 台體增衛崇旺 仰溸且慮 服弟 姑遣昔狀 而苦啣解免無期 以是爲悶 就此呈小錄 卽秋議李令家事也 事理則然 待其呈訴 嚴題推給 俾無狼狽之地 切仰切仰 似聞此令之季 亦以此事 有書托於台之蘭客云 一決而完兩家之事 豈不好哉 另施幸甚 餘在續候 不備 伏惟台下察 謹拜狀上
甲午七月卄日 服弟 耕輔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