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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087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682년 백광서 간찰 / 白光瑞 簡札
- ㆍ발급자
-
백광서(白光瑞, 1638~?)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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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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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년 10월 2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陽月二十一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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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5 × 47.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682년 10월 21일에 백광서(白光瑞, 1638~?)가 모인에게 올린 편지이다. 간찰에는 흉년으로 인한 생계 곤란, 남쪽 지방의 농사 피해, 노부모 봉양의 어려움, 자신의 농토와 밭농사 형편, 그리고 말을 팔아 급한 생계를 해결하려는 사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682년 10월 21일에 백광서(白光瑞, 1638~?)가 모인에게 올린 편지이다. 간찰에는 흉년으로 인한 생계 곤란, 남쪽 지방의 농사 피해, 노부모 봉양의 어려움, 자신의 농토와 밭농사 형편, 그리고 말을 팔아 급한 생계를 해결하려는 사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친족 간에 경제적 곤궁과 구휼 요청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발신자가 형의 집도 새로 짓는 일로 여유가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며 탈 수 있는 말 한 필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 대목은 흉년기의 생계 위기와 친족 간 상호부조의 실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백광서는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문옥(文玉)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겨울 추위 속에 형과 집안의 안부가 어떠한지 묻는다. 이어서 자신은 객지의 고생을 견디기 어렵고, 부모 곁을 떠난 지 오래되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날마다 간절하다고 한다. 중반부에는 올해 농사가 참혹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남쪽 지방이 더욱 심하다고 하며, 자신처럼 노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사람이 장차 어떻게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겠느냐고 걱정한다. 이어 어제 박 선달(朴先達)에게 들으니 동강(洞江) 사람이 와서 형의 집 농사는 평년과 다름없다고 전하며 부러운 심정을 나타낸다. 또 동중(洞中)의 친지들 가운데 형의 집 다음으로 형편이 나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하며,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음을 드러낸다. 이어서 자신의 집은 이미 논농사에서 실패했고, 밭에 거름 줄 물건도 없어 보리갈이마저 반드시 포기하게 될 형편이라고 하였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형의 집도 영조(營造)를 마친 뒤라 다른 일을 돌볼 겨를이 없음을 잘 알지만, 이쪽의 사정이 매우 절박하기 때문에 감히 번거롭게 아뢴다고 하였다. 끝으로 동중의 여러 벗들에게는 아직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지 못했음을 탄식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책이 없어 오래된 일을 다시 꺼내 말하니 낯이 매우 두껍다고 자책하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제목 없음
別來已久 瞻遡政苦 卽不審冬寒 兄閤候如何 區區慕用之至 弟 客苦難堪 而離親已久 歸思日切 况聞年事之慘 南土尤甚 如我奉老之人 將何以圖其也耶 昨聞朴先達言 洞江人來傳 兄家農事 無異常年 喜幸之餘 瞻羨無已 洞中親舊 次於兄家者 未知誰某耶 吾家則旣失於畓 又無糞田之物 牟耕亦必癈閣 雖欲保活 不亦難乎 玆不得已放賣所騎 以爲救急之策 情勢誠可憫也 兄家營造之餘 固知難遑於他 而此間事勢 極爲切迫 敢此煩陳 不勝未安 安無論好惡 若可跨足 留念覓惠 則何幸如之 洞中諸友許 未之書候 歎咄歎咄 百加思之 固無他策 擧此陳久之事 顔甚厚矣 傷哉傷哉 餘萬 唯祈對時增重 不宣 伏唯兄在 謹上狀
壬戌陽月二十一日 弟 光瑞 頓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