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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찰은 1816년 10월 23일에 박영원(朴永元, 1791~1854)이 삼척영장(三陟營將)의 기실(記室)에 보낸 답장 편지이다. 피봉에는 삼척영장기실 회납(三陟營將記室回納), 예판사찰(禮判謝札)이라 적혀 있어, 수신처와 문서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간찰은 조선 후기 관료 사이에서 안부 문안, 공역(公役)으로 인한 피로, 집안의 우고(憂故), 물품 증여에 대한 사례, 별지(夾紙)에 담긴 부탁을 확인하는 과정이 함께 나타나는 자료이다.
박영원은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기(聖氣), 호는 오서(梧墅)이다. 1816년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을 비롯한 청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837년 실록교수당상을 맡아 실록 교정에 참여하였다. 이후 이조 판서, 진하 겸 사은사 등을 역임하고 청나라에 다녀왔다. 철종 즉위 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내고 실록청 총재관을 겸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멀리서 수신자를 생각하던 중 보내준 편지를 받고, 겨울철 따뜻한 날씨 속에 수신자의 기거가 평안함을 알게 되어 위로가 한량없다고 한다. 이어서 자신은 공역으로 피로한 가운데 집안의 우고까지 겹쳐 다시 마음을 괴롭히니 참으로 답답하다고 하였다. 중반부에는 수신자가 함께 보내준 여러 물품에 대해, 그 두터운 정성이 이처럼 넉넉하게 이르렀다고 하며 삼가 받고 깊이 감사한다고 전한다. 이어서 별지의 내용은 잘 알았으나, 그 뜻을 일찍 알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작별할 때 미처 말로 부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지금은 다시 말할 만한 인편이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다만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잊지 않겠다고 하며, 나머지는 우선 장황히 쓰지 못하고 사례의 뜻으로 마무리한다.
제목 없음
三陟營將記室 回納
禮判謝札 省式
遠想中 獲承委札 以審冬㬉 令履安勝 慰沃無量 拙狀 公役勞瘁中 憂故際又爲惱 良可悶也 伴惠諸種 情曲所到 有此腆 儘依領 珍戢 夾紙奉悉 恨不早知此意 臨別時 未及言托也 今恐無可言之便 而第當在心勿忘耳 餘姑不宣謝式
丙子陽月卄三 永元 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