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D004_01_A00080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1년 박대규 간찰 / 朴大圭 簡札
- ㆍ발급자
-
박대규(朴大圭, 1768~?)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5.4 × 5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31년 11월 24일에 척종(戚從) 박대규(朴大圭, 1768~?)가 행헌(行軒)의 집사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31년 11월 24일에 척종(戚從) 박대규(朴大圭, 1768~?)가 행헌(行軒)의 집사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피봉에는 회환서장(回還書狀), 행헌집사(行軒執事)라고 적혀 있어, 관아의 행헌에 있는 집사에게 회답 형식으로 보낸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관아 관계자 또는 인척 사이에서 이동과 귀환, 시험 일정, 병환, 겨울철 관무를 둘러싼 안부와 정서적 교류가 이루어진 사례이다. 특히 선래(先來)를 통해 수신자의 체도(體度)와 일행의 안부를 확인하고, 다시 만날 기약을 시험일과 본주(本州) 도착 일정에 맞추어 언급한 점은 관원 이동과 정보 전달의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박대규는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경질(景質)이다. 1805년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부수찬을 지내며 시정(時政)과 수성(修省)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이후 관직 생활을 이어가던 중 역적 박종일과의 인척 관계가 문제 되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으나 관직에서 완전히 축출되지는 않았다. 1833년 동래 부사에 임명되어 지방 행정을 담당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서울에 머물 때 찾아뵙지 못했고, 수신자가 관아로 돌아갈 때도 늦어져 작별하지 못했으므로 그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을 말로 다 아뢸 수 없다고 한다. 이어서 먼저 온 사람이 전한 말을 듣고, 수신자의 체도(體度)가 다행히 별다른 손상이 없으며 일행도 모두 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와 기쁨이 한량없다고 하였다. 중반부에는 시험일은 그믐과 초하루 무렵이고, 그때쯤 본주(本州)에 도착할 것이므로 떠돌다 우연히 만날 기회가 멀지 않다고 하며, 미리부터 기쁘고 기대되는 마음을 드러낸다. 이어서 자신은 가을 학질(痁疾)을 앓은 뒤 아직 남은 증세가 많고, 겨울철 업무에도 조금의 겨를이 없으니 한스러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제목 없음
回還書狀 行軒執事
在洛寓未進 還衙遲未別 耿悵何可仰喩 卽聞先來言 體度仗 王靈 別無所損 一行亦無頉 慰喜沒量 試日則晦初 當抵本州 萍逢之期 前在不遠 預用忻倒 戚從秋痁 尙多餘症 冬務又無片暇 所恨何勝可言 火下胡草 不備書儀
辛卯至月念四 戚從 朴大圭 拜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