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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072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4년 민겸호 간찰 / 閔謙鎬 簡札
- ㆍ발급자
-
민겸호(閔謙鎬, 1838~1882)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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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9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戌九月十九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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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35.2 × 48.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74년 9월 19일에 민겸호(閔謙鎬, 1838~1882)가 수신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는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고 있어, 상중(喪中)에 있는 처지를 드러낸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74년 9월 19일에 민겸호(閔謙鎬, 1838~1882)가 수신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는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고 있어, 상중(喪中)에 있는 처지를 드러낸다. 수신자는 오마(五馬)라는 표현과 새로 부임했다는 신리(新莅)의 언급으로 보아 지방관으로 남쪽 고을에 부임한 인물로 판단된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사대부가 상중에 지방관에게 보낸 청탁성 편지로, 안부 문안, 상례(喪禮)의 슬픔, 별지에 적은 긴급한 사안, 관아의 아전 파견과 직접 면담 요청이 함께 담겨 있다. 특히 발신자가 연사(練祀)를 이미 지냈음에도 슬픔이 새롭다고 토로하는 동시에 수신자의 행정적 조처를 간절히 요청한 점은 상중의 사적 애통과 현실적 민원 또는 청탁이 서간 속에서 함께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민겸호는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윤익(允益)이다. 1866년 문과에 급제한 뒤 부수찬, 성균관 대사성, 예조 참판, 형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형조·병조·예조 판서 등 요직을 두루 지내며 여흥 민씨 척족 세력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1880년 통리기무아문 당상과 군무·변정·기연 당상을 맡아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초빙하여 별기군을 창설하였다. 그러나 군료 지급 문제와 군제 개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궁중에 난입한 군졸들에게 김보현과 함께 살해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수신자가 오마(五馬)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고 한다. 이어서 서리가 내리는 계절에 정무를 보는 틈에도 수신자의 체후가 계속 평안한지 묻고, 새로 부임하여 처리해야 할 여러 업무가 정신을 괴롭히지는 않는지 염려한다. 중반부에는 자신은 목숨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으나, 차마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며 연사(練祀)까지 이미 지나갔으니 슬픔이 끝없고 다시 새로워진 듯하다고 토로한다. 이어서 위에 붙인 협록(夾錄)을 내려다보면 사정을 밝게 알 수 있을 것이라 하며, 그 일이 과연 매우 긴절하므로 이렇게 간청한다고 밝힌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부디 아전을 보내 전갈을 전하게 하고, 관련 인물을 불러 직접 만나 보며, 사안에 따라 세심하게 보호하고 처리해 달라고 거듭 부탁한다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제목 없음
稽顙 五馬南下 瞻仰益勤 謹詢霜令 政餘令體連護萬旺 新莅凡務 不以惱神者否 區區哀溯 不任願聞 罪人 頑縷苟延 而忍見時序變遷 練祀已過 痛霣罔涯 益復如新 惟幸省依耳 此上夾錄 俯覽可燭 而果係緊切 故爲以仰懇 幸須遣吏傳喝 招見賜顔 隨事曲護 切仰切仰 餘荒迷不次 疏上
甲戌九月十九日 罪人 閔謙鎬 拜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