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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019_018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90년 이택환 간찰 / 李宅煥 簡札
- ㆍ발급자
-
이택환(侍生李宅煥, 1854~1924)
원문내용 侍生 李宅煥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90년 7월 1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甲七月十二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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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갑신년(1890) 7월 12일에 이택환(李宅煥, 1854~1924)이 스승에게 보낸 편지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갑신년(1890) 7월 12일에 이택환(李宅煥, 1854~1924)이 스승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는 과거 한때 출입이 빈번했던 수신자와의 관계가 오랫동안 끊긴 데에 대한 안타까움을 밝히면서 서두를 시작한다. 과거 벼슬을 하지 않았을 때는 거의 매일같이 서로 왕래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가 오랫동안 단절하게 된 상황을 회고하며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이어서 이택환은 수신자의 안부를 묻는 동시에 자신의 신세를 토로한다. 자신은 분수에 맞지 않게 과거 시험에 급제했으나, 이후 시골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실을 자조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후한 때 효렴(孝廉)과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천거를 받아 천자가 특별히 현훈(玄纁)과 고폐(羔幣)를 갖추어 불렀는데도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던 주섭(周燮)과 당(唐)나라 때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한 뒤에 뜻대로 벼슬길이 트이지 않았던 노장용(盧藏用)의 고사를 끌어내어 벼슬길이 순탄하지 않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였다. 편지 중반부에는 당시 정치적 · 사회적 상황에 대한 현실 인식도 드러난다. 조정과 세상의 변화무쌍함,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토로하며, 과연 과거 급제자들이 국가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도 드러낸다. 옥윤 씨의 최근 근황을 궁금해하며 아직도 외지에 있는지 혹은 도성으로 돌아왔는지를 묻고 있으며, 이 기회를 통해 수신자의 애정을 다시금 청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도움을 청하고 있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해주는 심정으로 자신을 도와 달라는 의미로, 상대의 지위를 의지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과거 급제 이후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한 인물의 내면을 진솔하게 그린 문헌이다. 무엇보다 과거시험에 급제하였지만 곧바로 출세하지 못하고,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하는 당대 중 · 하급 사대부의 삶과 심리를 섬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 사회적 가치가 있다. 또한 간찰 속의 표현들은 문학적 수사와 비유가 풍부하게 사용되어, 고전문학의 형식적 특성과 수사 기법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한 자료가 된다. ‘동강 고수(東崗固守, 은둔)’와 ‘종남 지경(終南捷徑, 출세)이라는 고사적 대비를 통해 인생의 기로에 선 지식인의 고민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 사대부들이 느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 공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택환은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자는 형락(亨洛)이며, 호는 회산(晦山)이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인 동곡(桐谷) 이조(李晁, 1530~1580)의 후손이다.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의 문인으로 영남 노사학파(蘆沙學派)의 맥을 잇고 있다. 1882년(고종 19)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과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나라가 주권을 잃고 세태가 황망하자 세상을 떠나 화계(花溪)에서 숨어 살고자 하였다. 학문은 정주학과 율곡학에 연원을 두었으며, 문집으로 『회산집(晦山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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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제목 없음
昔在韋布 朝暮門屛 釋
褐一來 逋絕踪跡 正緣千里
涯角 勢値固然 而寸楮上一候
亦未趁 恒齎菀悒 伏不審
台體候以時萬安 間又晉得
何班也 伏慕區區不任獻祝 侍生
素以駑下才質匪分忝科 而
謀身太拙 不能自脫於空山樵
牧之社 此非東崗固守 又非終南
捷徑 如何得進取一步也 儘覺
天下事非窮人所謀 恒切自矜
且今世道日變 國事多艱 在
從班之列者當如何報效也 徒切
漆室之憂而已 玉潤氏尙在石室耶
或還都下 而近又得何狀也 不
勝未聞之限 幸因秋試便風
擬以探候 又說盡情勢 餘伏望
更賜平日款愛之情 援溺而進
之 則豈非成人美之道乎 餘外區區
不能盡白
甲甲七月十二日侍生李宅煥上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