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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찰은 발신자 민종묵(閔種黙, 1835~1916)이 지인에게 보낸 문서로, 행정적 용무 수행과 관련된 긴급한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성 시점은 9월 중 어느 날이며, 문체는 간결하지만 정중한 예법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 후기 문인의 간찰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서두에서는 가을 날씨가 깊어졌음을 알리며, 수신자의 건강을 기원하고 새로 맡은 업무가 과중하지 않기를 바라는 따뜻한 염려가 담겨 있다. 이어지는 내용은 행정적인 문제와 관련된 긴박한 요청이다. 발신자는 진주(秦主事)은 해안 지역에 있는 듯 하지만, 그 일에 관해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신자에게 하급 행정인력을 동원하여 가능한 한 빠르게 위치를 탐색하고 연락을 취해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매우 공손하고 격식을 갖춘 문장으로 간찰을 마무리하고 있다. 수신에서는 진주의 일이 해주(海州)에 없을 경우, 인근 고을을 탐색하여 문서를 전달해줄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관료 사회의 행정적 소통 구조와 문서 전달 체계를 엿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관직자 간의 소통에서 하급 행정 인력을 활용한 정보 탐색과 서신 전달 방식, 그 과정에서의 예법 준수와 격식 있는 문체의 사용은 당대의 관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공적 책무 수행과 개인적 정서의 교차를 담은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민종묵은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현경(玄卿)이며, 호는 한산(翰山)이다. 1874년 증광문과 을과로 급제한 뒤, 부수찬 · 사간원 지평 · 성균관 대사성 ·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통상사당상(通商司堂上)으로 임명되었고, 이때부터 외교 통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890년 일본과 월미도지기조차조약(月尾島地基租借條約)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자 반대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일제의 강제 병합조약 체결로 국권이 넘어간 뒤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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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제목 없음
秋氣日高 伏訊比者
旬宣台軆美赴萬旺 新莅營務不至惱神
否 區區頌禱 弟擾甚悶人 無他可述耳 此呈書
痛
覽可燭矣 而例是緊急公柬 秦主事比間
似在營底沿海等地 而凡此未可酌知 故玆
仰寄 幸俾營隷搜探其頭 任地趕速
信致受答 以
逋爲荷 肅此奉布敬禮
台安
弟閔種黙 拜謝
九月吉日
秦主事雖不在海州 如轉問各
邑 須詳探所留處專隷傳札
後亦卽受札 以爲上送之地又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