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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찰은 임0(壬0)년 12월 23일에 이재(李縡, 1680~1746)가 상대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이재는 ‘복인(服人)’라 자칭하며 현재 상중에 있으며, 연말의 정서 속에서 깊어지는 그리움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우려, 개인적 소회가 복합적으로 담긴 문서이다. 편지 서두에서 연말이 다가오며 더욱 깊어지는 형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어서 형의 편지를 받고 큰 위안을 얻었다고 하며, 형의 안부가 추운 날씨 속에서도 평안하길 기원하였다. 반면 자신은 깊은 산속에 외롭게 틀어박혀 있으며, 몸과 마음 모두 고단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토로하였다. 특히 북방으로부터 들려온 소식을 통해 국가적 정세에 대한 염려도 함께 내비쳤다. 이는 사대부로서의 의식과 당시 불안한 정치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된다. 중간 부분에서는 형이 말한 혼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랑감과 집안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은 알지 못하므로 쉽게 논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계문에 대한 인준이 되지 않은 상황을 알렸고 누이에 대해서는 염려가 크다는 심정을 전하였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어떠한 언어와 태도로 인간관계를 맺고 국가 정세를 의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사적인 정서(그리움)와 공적인 감정(나라에 대한 근심)을 병치하며 표현한 점에서, 유학자의 내면과 현실 인식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또한, 어떠한 사안에 대해 언급할 때 신중히 판단하고자 하는 태도는 사대부 사회의 조심스러운 인간관계와 판단 윤리를 드러내며, 이 시기 간찰의 대표적인 서술 방식을 잘 보여주었다. 이 간찰의 수록 순서를 살펴보면, 먼저 김수항을 필두로 그의 둘째 아들 김창협, 셋째 김창흡, 넷째 김창업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이는 안동 김씨 가문 내의 혈연적 서열과 위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할 점은, 넷째 아들 김창업의 간찰 다음에 이재(李縡)의 간찰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재는 김창협의 문인이자 후일 노론의 중심 인물로 활동한 학자이다. 이러한 배열은 단순한 시간 순서나 편지의 내용적 연계만이 아니라, 인물 간의 관계성, 즉 사제(師弟) 관계와 학통의 연속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김수항을 중심으로 한 안동 김씨 가문의 영향력과 학통이 어떻게 외연으로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구도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 간찰의 편집 순서는 단지 문서의 나열이 아니라, 안동 김씨 가문의 정치적 위상과 학문적 계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의도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김수항에서 출발하여 그의 자제들, 그리고 그 학통을 이은 제자 이재로 이어지는 배열은, 한 가문이 지닌 학문과 정치의 전통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구조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재는 본관은 우봉(牛峰)이고, 자는 희경(熙卿)이며, 호는 도암(陶菴) · 한천(寒泉)이다. 1702년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가주서 · 홍문관 부교리 ·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의리론(義理論)을 들어 영조의 탕평책을 부정한 노론 가운데 준론(峻論)의 대표적 인물이고,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이간(李柬)의 학설을 계승해 한원진(韓元震) 등의 심성설(心性說)을 반박하는 낙론의 입장에 섰다. 저서로는 『도암집(陶菴集)』 · 『도암과시(陶菴科詩)』 · 『사례편람(四禮便覽)』 · 『어류초절(語類抄節)』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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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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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行盡矣 戀思倍切 續承
兄手滋 慰浣之極 殊不知雪嶺
之爲遙也 嚴沍
起居增勝 弟塊蟄窮山 百感愼
膺 自聞北報 宗國之憂尤消鑠不
得奈何 所敎昏處以外 面見之固
無不可 而郞材與家間形勢 此則素
昧 何能容議於其間 大抵未知必
脉於前日所示也 要在審愼之
財量焉 頃有復未及覽者五
其啓姑不准 而妹亦一向安未戀
慮否 惟幾
迓新多移 不宣伏惟
兄照 壬臈之卄三日 弟服人縡 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