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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44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봉래시집 / 蓬萊詩集
- ㆍ표제
- /
- ㆍ내제
- /
- ㆍ권수제
- 봉래시집 / 蓬萊詩集
- ㆍ판심제
- 봉래시집 / 蓬萊詩集
- ㆍ저자
- 양사언(楊士彦 著, 1517~1584, 조선)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未詳 서기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목판본 권수 3卷 책수 1冊 질 완질 전 장_매 87장 절_면 책차 3 권차 1~3 점수 1 크기 28.0 × 19.5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有界 판구 白口 어미 內向混葉花紋魚尾 광곽 四周單邊 반곽크기 21.3 × 15.4 단수 행자수 10行20字 주쌍행 Y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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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발 정의 조선전기의 문인 양사언(楊士彦,1517-1584)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세기 초에 간행한 시문닙(詩文集). 주기사항 卷3 末의 반장은 필사(筆寫)임.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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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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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시집이다. 저자의 아들 양만고(楊萬古, 1574∼1655)가 1626년 무렵에 간행했다. 금강산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소재로 지은 시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분량은 3권 1책이다.
양사언의 자는 응빙(應聘)이고‚ 호는 봉래(蓬萊)ㆍ완구(完邱)ㆍ완구자(完丘子)ㆍ창해(滄海)ㆍ해객(海客)이며‚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부친은 양희수(楊希洙)이고, 모친은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송환정(宋環貞)의 딸이다. 1546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삼등(三登), 평양, 강릉, 함흥, 회양(淮陽), 철원, 안변(安邊)의 수령을 지냈다. 금강산을 좋아하여 금강산의 다른 이름인 ‘봉래’를 호로 삼았다.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일컬어진다.
만폭동(萬瀑洞) 너럭바위에 쓴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글씨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양희수의 세 아들이 모두 유명한데, 양사준(楊士俊)이 첫째, 양사언이 둘째, 양사기(楊士奇)가 셋째이다. 조경(趙絅, 1593∼1669)의 『용주유고』(龍洲遺稿) 권 15에, 저자의 생애를 간략히 기록한 「부사봉래양공묘갈명」(府使蓬萊楊公墓碣銘)이 있다.
본 문헌은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1에는 오언절구 30여 수‚ 육언(六言) 2수‚ 칠언절구 11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편수는 제목 기준이다. 권 2에는 오언율시 40여 수, 칠언율시 30여 수‚ 오언배율 3수‚ 칠언배율 3수, 습유(拾遺) 13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 1에 실려 있는 「증최고죽」(贈崔孤竹)과 「제발연경석상」(題鉢淵磬石上)은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린 작품이다. 권 2에 실려 있는 「장항령」(獐項嶺)의 제목 아래에는 『동문선』(東文選)에 실렸다는 기록이 있다. 본 문헌이 간행되기 전에 이미 『동문선』에 실렸다는 이야기임으로 본 문헌의 간행 시기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권 3에는 오언고풍(五言古風) 19수‚ 칠언고풍(七言古風) 2수‚ 장단구(長短句) 11수, 부(賦) 1편, 책(策) 1편, 발(跋) 1편, 기(記) 2편‚ 전(傳) 1편, 제문 2편‚ 편지 2편이 수록되어 있다. 「단사부」(丹砂賦)는 1540년에 생원시를 치를 때 제출한 것이고, 「전책」(殿策)은 1546년에 문과 시험을 치를 때 제출한 것이다. 「기청허서」(寄淸虛書)는 서산대사(西山大師, 淸虛, 休靜, 1520∼1604)에 보낸 편지로 두 편이 이어져 있다.
이 뒤에는 유근(柳根, 1549∼1627)이 1625년에 지은 「비자기」(飛字記)가 실려 있다. 저자가 구선봉(九仙峯) 기슭, 금호(鑑湖) 곁에 지은 정자가 비래정(飛來亭)인데 이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권 2에도 「비래정」이라는 시가 있다. 「비자기」 뒤에는 저자의 형 양사준의 시를 모은 『풍고시』(楓皐詩)와 저자의 동생 양사기의 시를 모은 『청계시』(靑溪詩)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권 3 끝부분에 실려 있는 「비자기」는 유근(柳根)이 이조 좌랑으로 있던 시기에 지은 글이므로 작성 시기를 1625년으로 특정할 수 있다. 한편, 조경(趙絅)이 1630년에 지은 묘갈명의 첫 부분에는 저자의 아들이 시집을 간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두 기록을 참고하면, 본 문헌은 저자의 아들 양만고(楊萬古)가 1626년 무렵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본(古本)인 데다가 희귀본이어서 귀중본에 해당한다. 권수제와 판심제 모두 ‘봉래시집’으로 되어 있으므로, 서명은 봉래시집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권 1 첫 장에 장서인 3과가 있다. 귀중본이므로, 본 문헌의 소장자가 누구였는지도 조사해 둘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