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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38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동정록 / 東征錄
- ㆍ표제
- 동정록 / 東征錄
- ㆍ내제
- /
- ㆍ권수제
- 동정록 / 東征錄
- ㆍ판심제
- /
- ㆍ저자
- 미상(未詳)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己卯年】 서기년 【1939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필사본 권수 不分卷 책수 1冊 질 완질 전 장_매 37장 절_면 책차 1 권차 점수 1 크기 29.3 × 19.2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有界(뛰 일부 無界) 판구 無 어미 無魚尾 광곽 無 반곽크기 × 단수 행자수 10行24字 주쌍행 Y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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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발 정의 어떤 사람이 병술년 추분날 종질(從姪)들과 함께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래산(萊山)으로 성묘하러 가는 여정을 필사해 놓은 글 주기사항 表紙: '‘己卯(1939)至月念三謄草.’ 卷末: ‘己卯(1939)十一月二十三日曾孫鍾賢書.’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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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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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어떤 사람이 병술년 추분날 종질(從姪)들과 함께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래산(萊山)으로 성묘하러 가는 여정을 필사해 놓은 글이다. 표제와 권수제는 동정록(東征錄)이다. 표지에 ‘己卯至月念三謄草’라고 적혀 있고, 권말에 ‘己卯十一月二十三日曾孫鍾賢書’라고 적혀 있다. 본 문헌의 필사자는 이 글을 지은 사람의 증손자로 이름은 종현(鍾賢)이고 필사 시기는 기묘년 십일월 이십삼일이다.
본 문헌의 저자가 누구인지, 필사자인 종현(鍾賢)이 누구인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다만 본문 중에, 본부아문(本府衙門) 밖에서 나의 벗 오경연(吳慶延)을 만났다는 말이 나오는데, ‘본부아문’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오경연은 1854년 무렵에 그리고 1873년 무렵에 자인현감(慈仁縣監)을 지낸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이 뒤에 “친구 오경연의 일은 밀주록(密州錄)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라는 주석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아도 오경연은 관직 생활을 한 사람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성묘 여정을 시작한 병술년은 1886년이고, 이 문헌을 필사한 기묘년은 1939년이 된다.
그리고 본문 중에 “첨사공파(詹事公派)”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으로는 성씨를 특정하기가 어렵지만, 동래정씨를 상정해 볼 수는 있겠다. 권말에 「갑진십이월이십삼일수진헌수운」(甲辰十二月二十三日晬辰獻壽韻)이 있는데 거기에 올라 있는 이름은 ‘子 致中’, ‘子 致薰’, ‘孫 善民’, ‘孫 亨民’, ‘孫 耘民’ 등이다. 갑진년은 1904년인데 이 시기에 장성한 아들과 손자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아울러 이것을 전제로 하면, 필사 시기는 1939년이다.
병술년 추분날 성묘 여정을 시작했다. 추분날은 8월 22이었고, 병술년은 1886년으로 추정된다. 래산(萊山)과 장산(萇山)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목적지는 현재의 부산 동래구이다. 이곳이 저자 집안 조상들의 세거지(世居地)였다. 23일에 합천(陜川)에 당도하고 25일에 팔계(八溪), 26일에 마수원(馬首院)을 지나, 27일에 무봉암(舞鳳庵) 근처에서 유숙하고, 28일에 친구 오경연(吳慶延)을 만나 운선암(雲仙巖)을 둘러보았다.
29일에 친구와 작별하고 9월 1일에 창녕(昌寧)을 지나, 9월 2일 만덕령(萬德嶺)에 이르러 동래부(東萊府)를 굽어보았다. 이때부터는 묘소를 찾아 성묘하는 내용이다. 9월 8일 창촌(倉村)을 지나고 9월 10일 만리성(萬里城)에 이르러 경주로 들어갔고, 9월 12에는 불국사에 들렀다. 이 뒤에는 동경이십칠영(東京二十七詠)이 나온다. 경주의 명승지 27곳을 둘러보고 시로 남긴 것이다.
첫 번째 나오는 시는 「동대령」(東大領)이다. 시어에 고한국(古韓國)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뒤에서도 삼한국(三韓國)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어서 금오산, 육부촌(六府村), 오릉수(五陵藪), 성모사(聖母祠), 알영정(閼英井), 금척원(金尺院), 양산택(楊山宅), 포석정, 선도산(仙桃山), 백률사(栢栗寺), 문천(蚊川), 반월성, 첨성대, 봉황대, 안지(雁池), 계림(鷄林), 나정(蘿井), 숭덕전(崇德殿), 황남전(皇南展), 인종(人鍾), 옥적(玉笛), 마검굴(磨劒窟), 동묘(諌墓), 교궁(校宮), 귀탑(龜塔) 등이 나온다.
9월 16일 무계(茂溪)를 건너, 9월 17일 화양(華陽)으로 들어갔다. 이 뒤에 여행 일정을 정리해 놓은 6줄의 글이 있는데 발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己卯十一月二十三日曾孫鍾賢書’라는 말로 글을 맺고 있다. 몇 가지를 추정해서 이야기하면, 증손 종현(鍾賢)이 1939년 11월 23일에 이 글을 필사했다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