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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36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관동승경 / 關東勝景
- ㆍ표제
- 자하만록 / 紫霞漫錄
- ㆍ내제
- /
- ㆍ권수제
- 관동승경 / 關東勝景
- ㆍ판심제
- /
- ㆍ저자
- 미상(未詳)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未詳 서기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필사본 권수 不分卷 책수 1冊 질 완질 전 장_매 23장 절_면 책차 1 권차 점수 1 크기 25.4 × 18.5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有界 판구 花口 어미 上下向2葉花紋魚尾 광곽 四周雙邊 반곽크기 × 단수 행자수 10行20字 주쌍행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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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발 정의 관동 지역을 유람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에서 만든 지리지(地理志). 주기사항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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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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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관동 지역을 유람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에서 만든 지리지(地理志)이다. 편찬자는 파악하기 어렵다. 금강산 일대의 명승지를 중심으로 관동의 명승지 31곳을 선정하여 그곳의 위치, 이름의 유래, 그곳에 얽힌 고사 등을 담박한 필체로 설명했다.
본 문헌의 분량은 1책 22장이다. 아래 판구는 ‘書林〇〇’이 판각되어 있는 화구(花口)이며, 종이는 방각본(坊刻本) 형태를 띠고 있다.
본 문헌의 표제는 ‘紫霞漫錄’이다. 여기에서 자하(紫霞) 곧 자줏빛 노을은 금강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권수제는 ‘關東勝景’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관동의 명승지 31곳은 다음과 같다. 피금정(披襟亭), 단발령(斷髮嶺), 장안사(長安寺), 명경대(明鏡臺), 명연(鳴淵), 삼불암(三佛巖), 백화암부도(白華庵浮屠), 표훈사(表訓寺), 만폭동(萬瀑洞), 내원통암(內圓通庵), 수미탑(須彌塔), 헐성루(歇惺樓), 마하연(摩訶衍), 묘길상(妙吉祥), 외선담(外船潭), 유점사(楡岾寺), 신계사(神溪寺), 옥류동(玉流洞), 비봉폭(飛鳳瀑), 구룡연(九龍淵), 흑룡담망보덕암(黑龍潭望普德庵), 분설담(噴雪潭), 진주담(眞珠潭), 삼일호(三日湖), 해산정(海山亭), 대호정(帶湖亭), 옹천(甕遷), 총석정(叢石亭), 환선정(喚僊亭), 천도(穿島), 시중대(侍中臺).
첫 항목인 피금정은 강원도 금성현(金城縣)에 있던 것으로 금강산 유람의 관문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항목인 단발령에서는 이름에 얽힌 고사를 소개하고 있다. 신라의 태자가 여기에 올라와서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고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이름을 단발령이라 했다고 한다. 토단(土壇) 아래에는 세조가 심은 전나무 두 그루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편찬한 『임하필기』(林下筆記)의 권 37에 수록된 「봉래비서」(蓬萊秘書)에 실려 있는 ‘단발령’ 항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이 외에는 「봉래비서」에서 인용한 항목이 없다. 본 문헌의 다른 항목들도 출처가 있을 텐데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출처에 대해서는 심층 조사가 필요하다.
한편 『임하필기』가 간행된 것은 1871년이다. 따라서 본 문헌의 작성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1871년 이후이다. 본 문헌의 표지에는 ‘丁亥〇山’이라 쓰여 있다. 정해년은 편찬 및 필사 시기를 나타낸 것일 테고, 그러면 정해년은 1887년이다. 본 문헌에 수록된 마지막 명승지는 흡곡(歙谷)에 있는 시중대(侍中臺)이다. 바닷가에 시중호(侍中湖)라는 큰 호수가 있고 바다에는 일곱 개의 섬 곧 천도(穿島), 묘도(卯島), 우도(芋島), 승도(僧島), 석도(石島), 송도(松島), 백도(白島)가 있다. 그래서 이곳을 예전에는 칠보대(七寶臺)라고 했는데 한명회(韓明澮)가 순찰사로 와서 이곳을 유람하고 있을 때 한명회를 재상으로 임명한다는 주상의 명이 내려져서 이곳을 재상대(宰相臺)라는 의미에서 시중대(侍中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뒤에 수록된 글은 부록의 성격을 띤다. 처음 나오는 글은 금강산에 대한 김창협(金昌協)의 언급이고, 두 번째 나오는 글은 「금강산가송자하」(金剛山歌送紫霞)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광포(光圃) 이명한(李明漢, 1595∼1645)의 시를 빌어서 금강산으로 떠나는 자하(紫霞)를 배웅한 듯하다. 여기에 나오는 ‘자하’가 신위(申緯, 紫霞, 1769∼1847)와 관련이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다음에 나오는 부록은 이명한의 시에 화답하는 내용이다. 그다음에는 마지막으로 「관물시」(觀物詩)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