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D003_01_B00035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유두류록 / 遊頭流錄
- ㆍ표제
- /
- ㆍ내제
- /
- ㆍ권수제
- 유두류록 / 遊頭流錄
- ㆍ판심제
- /
- ㆍ저자
- 류몽인 저(柳夢寅 著, 1559~1623, 조선)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未詳 서기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필사본 권수 不分卷 책수 1冊 질 완질 전 장_매 15장 절_면 책차 1 권차 점수 1 크기 28.0 × 21.0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無界 판구 無 어미 無魚尾 광곽 無 반곽크기 × 단수 행자수 11行20字 주쌍행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
서명사항서 발 정의 조선시기의 문신인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남원 부사로 있던 1611년에 열흘 동안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기. 주기사항 비점(批點)이 있음.
- ㆍ소장본주기
-
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
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남원 부사로 있던 1611년에 열흘 동안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기이다. 본 문헌은 필사본으로 필사자와 필사 시기는 알 수 없다.
유몽인의 자는 응문(應文), 호는 어우당(於于堂)ㆍ간재(艮齋)ㆍ묵호자(默好子),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부친은 유탱(柳樘)이고, 모친은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의(閔禕)의 딸이다. 1582년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1589년에 문과 시험에서 장원으로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평양까지 호종했고, 세자시강원 문학에 임명되어 광해군의 스승 역할을 했다.
이후 함경도 순무어사(巡撫御史), 평안도 순변어사(巡邊御史), 경기도 암행어사, 대사간, 도승지, 남원 부사 등을 역임했다. 이항복(李恒福)ㆍ이정구(李廷龜) 등과 교유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인조 정권을 부정한다는 명목으로 참형을 당했다. 저서에 『어우야담』(於于野譚)과 『어우집』(於于集)이 있다.
본 문헌은 유몽인이 1611년에 지은 「유두류산록」(遊頭流錄)의 필사본이다. 통행본인 『어우집』 중간본은 1832년에 간행되었고, 「유두류산록」은 『어우집』의 후집(後集) 권 6에 수록되어 있다.
「유두류산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1611년 봄에 관직을 사직하였다. 조정의 옛 동료들이 늙지 않은 나이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마침 공석이었던 남원 부사의 자리에 저자를 천거하여, 2월 초에 부임하였다. 한식을 앞두고 순천 부사로 있던 유영순(柳永詢, 1552∼1630)이 들러서 술을 마시던 중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지리산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약속한 3월 27일 유영순이 찾아와서, 3월 29일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두 사람과 함께한 사람은 남원 사람 김화(金澕, 1571∼1645), 저자의 족질(族姪)인 신상연(申尙淵)과 신제(申濟) 등이다. 황산(荒山)의 비전(碑殿)을 지나, 운봉 현감 이복생(李復生)과 합류하여, 지리산 백장사로 향했다. 작은달이라 3월 30일은 없고 다음 날인 4월 1일, 황계(黃溪)와 환희령(歡喜嶺)을 지나 정룡암(頂龍菴)에서 머물렀다.
4월 2일에는 낮에도 어두컴컴하다는 월락동(月落洞)과 황혼동(黃昏洞)을 거쳐, 반야봉(般若峯)의 세 번째 기슭인 갈월령(葛越嶺), 터가 높고 시원하게 탁 트인 영원암(靈源菴)을 지나, 군자사(君子寺)에서 머물렀다. 옛날에는 절 앞에 신령스러운 우물이 있어서 영정사(靈井寺)라 불렸는데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름이 군자사(君子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선방(禪房) 앞에 활짝 핀 모란을 감상했다.
4월 3일에는 옛날 김종직(金宗直)이 지나간 의탄촌(義呑村), 3∼4리 더 떨어져 있는 원정동(圓正洞), 돌이 움푹 파인 곳을 용이 서린 곳이라 하여 이렇게 이름 지은 용유담(龍游潭), 가파른 마적암(馬跡庵) 터를 거쳐 두류암(頭流菴)에 도착했다.
4월 4일에는 청이당(淸夷堂), 영랑대(永郞臺)를 거쳐 천왕봉에 도착했다. 천왕봉에는 판잣집으로 지은 성모사(聖母祠)가 있다. 영남과 호남에서 복을 구하는 자들이 이곳에 와서 고려 태조의 모친을 떠받들고 있다. 원근의 무당들이 이 성모상에 의지하여 먹고 산다. 천왕봉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둘러 보고 향적암(香積菴)으로 내려가서 머물렀다.
4월 5일에는 영신암(靈神菴)을 둘러보고 의신사(義神寺)를 찾아가 묵었다.
4월 6일에는 신흥사(神興寺)를 거쳐 쌍계사(雙溪寺)에서 머물렀다. 쌍계사에는 최치원의 글씨와 비문이 남아 있다.
4월 7일에는 불일암(佛日菴), 화개동(花開洞), 와룡정(臥龍亭)을 둘러보고 남원부(南原府)의 남창(南倉)에 묵었다.
4월 8일 숙성령(肅星嶺)을 넘어 관부(官府)에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