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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33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금강록 / 金剛錄
- ㆍ표제
- 금강록 / 金剛錄
- ㆍ내제
- /
- ㆍ권수제
- 금강록 / 金剛錄
- ㆍ판심제
- /
- ㆍ저자
- 조기곤 저(趙基昆 著, 1775~?, 조선)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未詳 서기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필사본 권수 不分卷 책수 1冊 질 완질 전 장_매 27장 절_면 책차 1 권차 점수 1 크기 28.3 × 20.0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無界 판구 無 어미 無魚尾 광곽 無 반곽크기 × 단수 행자수 10行20字 주쌍행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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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발 정의 조기곤(趙基昆, 1775∼?)이 1829년에 관동지역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 주기사항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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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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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조기곤(趙基昆, 成而, 1775∼?)이 1829년에 관동지역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이다. 조기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본 문헌에서 몇 가지 사실을 추출하면 다음과 같다. 본 문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上之二十九年 무자년 3월 22일, 파현(巴峴)의 조자(趙子)가 관동의 금강산을 유람하려는 차에 이주망(李周望, 渭叟)도 동행했다.”
‘上之二十九年’은 무자년이 아니라 기축년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시기는 순조 29년, 곧 1829년밖에 없다. 다만 1828년을 1829년으로 착각했거나 기축년을 무자년으로 착각한 것이다. 본 문헌의 끝장에는 저자의 외생(外甥)인 권백영(權帛永)이 경인년 9월에 쓴 몇 줄의 발문이 있고, 경인년은 1830년이다. 두 기록을 비교해 보면, 앞에서 무자년이라고 한 것은 간지를 착각한 것이다. 본문이 끝나는 곳에, 족형(族兄) 천휴(天休)의 지(誌)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족제(族弟) 성이(成而)가 작은 책자를 소매에서 꺼내어 보여주는데 『금강록』이었다.”
여기에서 이 글의 지은이가 성이(成而)임을 알 수 있다. 그 뒷부분에는 여러 사람이 화창한 시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자(字)가 성이(成而)인 사람의 이름이 조기곤(趙基昆)임을 알 수 있다. 본문 첫 부분에, 본인은 나이가 55세인데 몇 년 지나면 근력이 딸려서 금강산을 유람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서두르게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저자의 출생 연도는 1775년이다.
본 문헌은 1책 29장이다. 이 글은 파현(巴峴)에서 시작하는데, 파현은 현재 경북 의성군과 대구광역시 군위군을 잇는 고개이다.
첫날인 3월 22일은 덕천(德川)에 사는 족제(族弟), 기성(基成)의 집에서 잤다. 덕천은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를 가리키는 듯하다. 23일에는 삼종형 택중(宅仲) 씨에게 잠시 인사하고 길을 떠나 진성(眞城)의 도리(島里)에 도착해서 박문혁(朴文赫)의 집에서 잤다. 진성(眞城)은 청송군 진보면(眞寶面)을 가리키는 듯하다. 24일에는 영현(英縣) 감천리(甘川里)에 사는 오복휴(吳復休)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는 한성(漢城) 구경을 가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25일에는 비가 왔다. 문소(聞韶)에 사는 신(申) 씨 형이 와서 이주망(李周望)과 하루 종일 바둑을 두었다. 26일에는 수비(首比)에 도착해서 박춘섭(朴春燮)을 방문했다. 27일에는 60리를 움직여 관동의 시작점인 평해(平海)에 이르렀다. 고단한 하루였다. 28일에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月松亭)을 보고 김응순(金應淳)을 방문했다. 3월 29일에는 사동(沙洞)에 이르러 황치문(黃致文)을 방문했다. 황치문은 황여일(黃汝一, 海月, 1556∼1622)의 종손이다.
30일에는 망양정(望洋亭)을 보고, 4월 1일에는 갈령(葛嶺)을 넘었다. 2일에는 소공대(召公臺)를 보고, 3일에는 삼척에 들어섰다. 이주망이 삼척도호부사 이광도(李廣度)를 만나려 했으나 그곳의 진장(鎭長)이 달가워하지 않았다. 4일에는 죽서루(竹西樓)를 보고, 5일에는 화비령(火飛嶺)을 넘고, 6일에 강릉에 도착했다.
7일에 양양(襄陽)에 도착해서 9일에 낙산사에 들렀다. 10일에는 간성(杆城), 11일에는 고성(高城)에 도착했다. 여기에서부터는 금강산 기행이다. 4월 25일 이천읍(伊川邑)에 도착했다. 5월 1일에는 양주(楊州), 5월 2일에는 경성(京城)에 도착했다. 5월 12일에 의성(義城) 초전면(草田面)에 도착했고, 5월 13일에 집에 도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