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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26_002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동번집 권3〜4 / 東樊集 卷三〜四
- ㆍ표제
- 동번집 곤 / 東樊集 坤
- ㆍ내제
- 동번집 / 東樊集
- ㆍ권수제
- 동번집 / 東樊集
- ㆍ판심제
- 동번집 / 東樊集
- ㆍ저자
- 이만용 저, 김택영 산정(李晩用 著, 金澤榮 刪定)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隆熙3年 서기년 1909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금속활자본 (全史字) 권수 4卷 책수 2冊 질 완질 전 138장 장_매 69장 절_면 책차 2 권차 3~4 점수 1 크기 31.0 × 20.7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有界 판구 花口('東樊集') 어미 上下向2葉花紋魚尾 광곽 四周單邊 반곽크기 21.7 × 15.2 단수 행자수 10行20字 주쌍행 Y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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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발 1. 不肖曾孫[李]源昇泣血謹識. 2. 不肖孫源昌泣血謹跋 정의 조선후기 시인 이만용(李晩用, 1792〜1863)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으로,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산정(刪定)을 거쳐 증손 이원승(李源昇)에 의하여 간행된 책. 주기사항 刊記: 隆熙三年(1909)孟冬刊行.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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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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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만용(李晩用, 1792∼1863)의 문집이다. 증손 이원창(李源昌)과 이원승(李源昇)이 1909년에 간행했다. 시 530여 수와 조부 이봉환(李鳳煥)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려고 쓴 편지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분량은 4권 2책이다. 활자본으로, 광곽은 사주단변, 반곽의 크기는 21.7×15.2cm,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 행자수는 10행 20자이다.
이만용의 자는 여성(汝成), 호는 동번(東樊),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조부는 이봉환(李鳳煥, 雨念, 1710∼1770)이고 부친은 이명오(李明五, 泊翁, 1750∼1836)이다. 1770년, 최익남(崔益男, 1724∼1770)은 세손이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소를 올렸다. 저자의 조부인 이봉환 또한 이 소와 관련되어 있어서, 고문을 받던 중 옥사했다. 이명오를 비롯한 다섯 아들도 유배형을 받았다. 저자는 1844년에 진사가 되었고, 1858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우통례(右通禮)를 거쳐 병조참지(兵曹參知)에 이르렀다.
본 문헌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속표지 서명 좌우에 ‘金澤榮于霖刪定 / 隆熙三年孟冬刊行’이라 인쇄되어 있다. 김택영(金澤榮, 1850∼1927, 字: 于霖)의 산정을 거쳐 1909년 겨울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수에 전체목록이 있다.
권 1에는 시 147수, 권 2에는 시 157수, 권 3에는 시 226수가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 4에는 제문 5편을 포함해서 산문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황산김공서」(與黃山金公書)는 김조순(金祖淳)의 아들 김유근(金逌根, 1785∼1840)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의 조부는 지금의 임금인 정조가 세손이었을 때 사도세자의 묘소에 참배해야 한다는 소를 올린 일과 관련되어 옥사했다. 이때 이명오를 비롯한 그의 다섯 아들도 유배형을 받기도 했다. 임금에 오른 정조는 1797년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토지를 하사하면서 1804년이 되면 이봉환의 충의를 표창하고 그 자손들을 등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정조가 승하하여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편지는 그때의 약속을 지켜달라는 취지로 보낸 편지이다.
「심암조상공육십일수계」(心庵趙相公六十一壽啓)는 조두순(趙斗淳, 心菴, 1796∼1870)의 회갑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1856년 4월 7일 저자는 선영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속리산에서 조두순 일행을 만나 수십 일간 유람하며 사찰들을 관광하고 시문을 짓고 즐겼다고 한다. 이 글은 그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제중부석한공문」(祭仲父石閒公文)은 저자의 중부 이숭오(李崇五, 1753∼1830)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이숭오는 이봉환의 둘째 아들로서, 이봉환이 옥사할 때 어린 나이로 3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제정승지문」(祭丁承旨文)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으로, 소식(蘇軾)이 구양수(歐陽修)의 죽음을 애도할 때 지은 글을 본받아 썼다고 한다.
「제망자지형문」(祭亡子之衡文)은 아들 이지형(李之衡, 1810∼1849)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발문 뒤에 ‘퇴당집초’(退堂集抄)가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이는 이지형이 지은 부(賦) 1편과 시 1수를 덧붙여 놓은 것이다. 권말에 증손 이원승(李源昇)이 지은 발문이 있다. 문득 자기 집안에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상들이 있음을 깨닫고 그 문집들의 간행 여부를 찾아보았다고 한다. 유독 이만용의 문집만 간행되지 않아 안타깝게 여기던 중, 백부의 부탁을 받고 문집의 간행에 착수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