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D003_01_B00024_002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폐추유고 권1〜2 / 敝帚遺稿 卷一〜二
- ㆍ표제
- 폐추유고 하 / 敝帚遺稿 下
- ㆍ내제
- /
- ㆍ권수제
- 폐추유고 / 敝帚遺稿
- ㆍ판심제
- 폐추유고 / 敝帚遺稿
- ㆍ저자
- 임홍량 저(任弘亮 著, 1634~1707, 조선)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戊辰年 : 序】 서기년 【1868년】 왕력 高宗5年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목활자본 권수 4卷 책수 2冊 질 완질 전 126장 장_매 56장 절_면 책차 2 권차 3~4 점수 1 크기 29.3 × 19.3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有界 판구 花口(敝帚遺稿) 어미 上下向2葉花紋魚尾 광곽 四周雙邊 반곽크기 20.5 × 16.4 단수 행자수 10行20字 주쌍행 Y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
서명사항서 戊辰(1868)三月嘉善大夫吏曹判書兼藝文館提學東陽申應朝(1804-1899)序. 발 崇禎四丙寅梧秋日(1866)族孫[任]憲晦書.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임홍량(任弘亮, 1634∼1707)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8년에 간행한 시문집. 권1·2에 시 273수, 권3·4에 서(書) 1편, 잡저 2편, 서(序) 3편, 발(跋) 2편, 상량문 4편, 제문 2편, 행장 1편 등이 수록되어 있음. 주기사항
- ㆍ소장본주기
-
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
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국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임홍량(任弘亮, 1634∼1707)의 문집이다. 저자의 후손 임성모(任聖模)가 1868년 무렵에 간행했다. 1688년 관동지역을 유람하고 지은 장문의 「관동기행」 등이 수록되어 있다. 본 문헌의 분량은 4권 2책이다. 활자본으로, 광곽은 사주쌍변, 반곽의 크기는 20.5×16.4cm,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 행자수는 10행 20자이다.
임홍량의 자는 여인(汝寅), 호는 폐추(敝帚),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부친은 임준(任晙, 1588∼1668)이고, 모친은 능주구씨(陵州具氏)로 구강(具剛)의 딸이다. 1657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합격했다. 이후 문천(文川) 군수, 통천(通川) 군수, 순천 부사, 진주 목사, 여주 목사 등을 역임했다. 김석주(金錫胄), 신임(申銋) 등과 교유했다. 저자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전우(田愚, 1841∼1922)의 문집인 『간재집』(艮齋集)에 실려 있는 「목사임공묘갈명」(牧使任公墓碣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우는 임헌회(任憲晦, 1811∼1876)의 문인이고, 임헌회는 본 문집의 발문을 지은 사람으로 임홍량의 족손(族孫)이다.
『폐추유고』는 4권 2책이다. 권수에 신응조(申應朝, 1804∼1899)가 임성모(任聖模)의 부탁을 받고 1868년에 지은 서문이 있다.
권 1∼2에는 180수에 가까운 시가 실려 있다. 저자가 통천(通川), 진주(晉州), 평산(平山), 순천(順天) 등 임지로 떠나면서 지인들과 나눈 시가 많다. 권 1에 수록된 「해산정차흡곡이사군운」(海山亭次歙谷李使君韻), 「차총석정운」(次叢石亭韻), 「등정양사헐성루」(登正陽寺歇惺樓), 「비로봉」(毗盧峯), 「자령읍파귀로상유작」(自嶺邑罷歸路上有作) 등은 통천(通川) 군수에 제수되었다가 파직되어 돌아가는 길에 관동지역을 유람하며 지은 시들로, 권 3의 「관동기행」(關東記行)과 연결된다.
권 3에는 세 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상김상서좌명」(上金尙書佐明)은 김좌명(金佐明, 1616∼1671)에게 올린 편지로, 부친 임준(任晙)의 묘도문자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저자와 교분이 있었던 김석주(金錫胄)가 그의 아들이다.
「관동기행」(關東記行)은 통천 군수에 제수되어 1688년 7월 초순 관아에 도착했지만 곧이어 파직되어 돌아가는 길에 8월 12일부터 19일까지 이화상(李華相), 이창(李晶) 등과 관동의 명승고적인 총석정(叢石亭), 사선봉(四仙峯), 칠보대(七寶臺), 금란굴(金幱窟), 삼일포(三日浦), 해산정(海山亭), 삼일호(三日湖), 유점사(楡岾寺) 등을 유람하고 지은 글이다. 52면에 이르는 장문이다. 글 초반에 안축(安軸, 1282∼1348)의 「근재집」(謹齋集)을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람 계획에 이를 참조했던 듯하다.
「제석기천군재유감서」(除夕基川郡齋有感書)는 1680년 섣달그믐날 지은 것으로, 예전에 풍기 군수로 있던 이황을 추모하며 이황의 문집을 읽다가, 비슷한 나이에 풍기(豊基) 군수로 오게 된 감회를 기록한 글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으로서, 이황이 이현보(李賢輔)에게 보낸 편지 중에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면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고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권 4에는 서문 3편, 발문 2편, 상량문 4편, 제문 2편, 행장 1편이 실려 있다. 행장은, 저자가 지은 부친 임준의 행장이다.
권말에는 임헌회가 1866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저자가 남긴 글은 사후 160여 년이 지나서야 정리되었는데, 저자에 대해 상고할 만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저자의 후손 임성모(任聖模)가 비로소 가장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네 권으로 편집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