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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23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인재유고 / 麟齋遺稿
- ㆍ표제
- 인재유고 / 麟齋遺稿
- ㆍ내제
- /
- ㆍ권수제
- 인재유고 / 麟齋遺稿
- ㆍ판심제
- 인재유고 / 麟齋遺稿
- ㆍ저자
- 이종학 저(李種學 著, 1361~1392, 고려)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未詳 서기년 왕력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목판본 권수 不分卷 책수 1冊 질 완질 전 장_매 47장 절_면 책차 권차 점수 1 크기 31.0 × 21.0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유계 판구 白口 어미 內向混葉花紋魚尾 광곽 四周雙邊 반곽크기 20.5 × 15.5 단수 행자수 8行16字 주쌍행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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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발 1. 正德己卯(1519)冬後孫[李]耔敢書于靜仁之思菴 2. 跋: 嘉靖癸未(1523)季秋朴祥昌世志. 3. 跋: 歲庚寅(1650)秋七月上浣十代孫通州大夫行公出縣監[二]泰淵拜手謹書. 정의 고려후기 문신 이종학(李種學, 1361-1392)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3년에 간행한 시문집(詩文集). 이 책은 조선 중종(中宗) 16년(1521)에 그 후손 이자(二耔)가 유고를 수집 간행하였고, 효종(孝宗) 원년(1650)에 그 10대손 태연(泰淵)이 중간하였다.고려 말기 이종학(李種學)의 문집. 주기사항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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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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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립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종학(李種學, 1361∼1392)의 문집이다. 저자의 후손 이태연(李泰淵, 1615∼1669)이 1650년 무렵에 간행했다. 분량은 불분권(不分卷) 1책이다. 목판본으로, 광곽은 사주쌍변, 반곽의 크기는 20.5×15.5㎝, 어미는 내향혼엽화문어미, 행자수는 8행 16자이다.
이종학의 자는 중문(仲文), 호는 인재(麟齋),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이곡(李穀, 1298∼1351)의 손자이며, 이색(李穡, 1328∼1396)의 둘째 아들이다. 모친은 권중달(權仲達)의 딸이다. 1376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합격한 뒤 장흥고사(長興庫使)에 제수되었다. 이후, 밀직사지신사(密直司知申事),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등을 역임했다. 공양왕이 즉위하고 부친 이색이 탄핵을 받게 된 뒤 유배지를 전전했다. 경북 상주 함창 지역에 유배되어 있다가 전북 고창 지역으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을 받고 이동하던 중 경남 거창 무촌리에서 암살당했다.
『인재유고』는 불분권 1책이다. 32살의 나이에 암살당했기에 정리된 유고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후손 이자(李耔, 1480∼1533)가 다른 후손 이유청(李惟淸, 1459∼1531)의 집에서 『인재유고』의 원고를 얻어 이를 1책으로 편집해 두었다. 이 원고를 노수신(盧守愼, 1515∼1590) 집안에서 간직해 오고 있었는데, 저자의 후손 이태연(李泰淵, 1615∼1669)이 노수신의 후손 노준명(盧峻命, 1596∼1652)으로부터 이 편집 원고를 얻어, 1650년에 간행하게 되었다.
『인재유고』는 124수의 시를 창작 연대순으로 배열해 놓았는데 그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남행록(南行錄), 관동록(關東錄), 남천상산록(南遷常山錄)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 뒤에 부록과 발문을 첨가했다. 남행록(南行錄, 제1판∼제24판)은 1389년 12월 8일 개경을 떠나 12월 24일 유배지인 전라남도 순천에 이를 때까지 지은 시, 그리고 1390년 3월까지 유배지에서 생활하며 지은 시를 모아놓았다. 관동록(關東錄, 제25판∼제29판)은 1391년 4월 2일부터 21일까지, 개경을 떠나 양평을 지나 충주와 횡성을 거쳐 강릉에 이르는 동안 지은 시를 모아놓았다.
여기에 수록된 첫 시는 「신미사월초이일장유대산청교도중」(辛未四月初二日將遊臺山靑郊途中)이다. 시어는 마치 오대산을 유람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듯 말하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유배지를 찾아가며 지은 시이다.
남천상산록(南遷常山錄, 제30판∼제35판)은 1391년 7월 1일부터 9월 22일까지 충북 진천에서 유배 생활할 때의 시를 모아놓았다. 부록에는 저자의 시 9수를 모아놓았다. 이중 마지막 시는 「기정향교제생걸필」(寄呈鄕校諸生乞筆)이다. 유배지를 전전하면서 남은 친구라곤 붓 한 자루가 다였는데 그마저 닳아 없어져서, 대나무를 꺾어 이 시를 지어 유생들에게 보내 붓을 구걸하였다. 하지만 응해주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마침 이공(李公) 한 사람이 붓과 먹과 종이를 보내 주었다고 한다.
권말에, 발문 3편이 있다. 이자(李耔)가 1519년에 지은 발문에는 이유청(李惟淸)에게서 원고를 얻어 편집해 둔 일을 기록하였다. 박상(朴祥, 1474∼1530)의 발문은 이자(李耔)의 부탁을 받고 1523년에 지은 것이다. 이태연(李泰淵)이 1650년에 지은 발문에는 노준명(盧峻命)으로부터 원고를 얻어 간행에 이르게 된 일을 기록하였다. 본 문헌은 희귀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규장각 소장본은 필사본이고, 간행본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본 원 외에 국립중앙도서관 한 곳뿐이다. 또한 간행 시기가 1650년이면 고본에 가까워서 보존 가치가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