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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20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유람기-호남
- ㆍ서명
- 고제봉유서석록 / 高霽峯遊瑞石錄
- ㆍ표제
- 유서석록 / 遊瑞石錄
- ㆍ내제
- /
- ㆍ권수제
- 고제봉유서석록 / 高霽峯遊瑞石錄
- ㆍ판심제
- 유서석록 / 遊瑞石錄
- ㆍ저자
- 고경명 저(高敬命 著, 1533~1592, 조선)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崇禎辛未 : 跋】 서기년 【1631년】 왕력 仁祖9年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목판본 권수 1 책수 1 질 완질 전 장_매 19장 절_면 책차 1 권차 1 점수 1 크기 21.7 × 17.3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有界 판구 白口(13장 14장 大黑九) 어미 內向2葉花紋魚尾 광곽 四周雙邊 반곽크기 16.0 × 12.7 단수 행자수 9行16字 주쌍행 Y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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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卷首:瑞石山名卽無等山有光州. 卷末: 발 1. 歲端陽初吉散人長澤高敬命識. 2. 崇禎辛未(1631)春禮部尙書兼翰林院學士恊理詹事府詹事徐光啓跋. 정의 제봉(霽峯) 고결명(高敬命, 1533〜1592)이 1574年(宣祖 7) 4月에 광주목사(光州牧使)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초청으로 광주 무등산(一名 瑞石山)을 관광하고 돌아와서 그해 5월에 그 여행기로서 쓴 책.4월 20일에 떠나서 25일에 돌아보며 쓴 무등산 기행문이다. 주기사항 卷末(筆寫): 우암 송시열의 금강산시와 율곡 이이의 시 필사.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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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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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고경명(高敬命, 霽峯, 1533∼1592)이 1574년 초여름에 광주(光州) 목사 임훈(林薰, 葛川, 1500∼1584)의 초청을 받아 함께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간행 시기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서광계(徐光啓)가 발문을 지은 1631년 무렵에 간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경명의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峰)ㆍ태헌(苔軒), 본관은 장흥(長興)‚ 시호(諡號)는 충렬(忠烈)이다. 부친은 고맹영(高孟英, 1502∼1565)이고, 모친은 남평서씨(南平徐氏)로 서걸(徐傑)의 딸이다. 1552년 진사시에 1위로 합격하고, 1558년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했다. 이후 부수찬, 부교리, 영암(靈巖) 군수, 서산(瑞山) 군수, 한산(韓山) 군수, 동래(東萊) 부사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 고종후(高從厚)와 고인후(高因厚)를 데리고 담양(潭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금산(錦山) 전투에서 아들 고인후와 함께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도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했다.
본 문헌은 19장 분량의 유람기이다. 서석산(瑞石山)은 저자의 고향 광주에 있는 무등산의 다른 이름이다. 고향 산이기에 어릴 때부터 자주 올랐던 곳이다. 이번 유람은 1574년 4월 20일에 출발하여 4월 24일에 여정을 마쳤고 서양초길(瑞陽初吉) 곧 5월 1일에 이 기행문을 썼다.
여정은 다음과 같다. 광주 목사 임훈이 함께 무등산에 오르자는 편지를 보내왔다. 연장자를 기다리게 할 수 없기에 저자는 일찍 4월 20일에 출발하여 약속 장소인 증심사(證心寺)에 먼저 가서 함께 산행할 일행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증심사의 정문 역할을 하는 취백루(翠栢樓)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의 시인인 김극기(金克己)의 “柏樹庭前翠, 桃花陌上紅”에서 이름을 취했다고 한다. 이날 저녁 이일원(李一元)과 김숙명(金叔明)이 잇달아 도착해서 담소를 나누며 함께 묵었다.
21일 아침 취백루에서 임훈을 맞이했다. 신언균(愼衡), 이억인(李億仁), 김성원(金成遠)‚ 정용(鄭庸)‚ 박천정(朴天挺)‚ 이전(李傎)‚ 안극지(安克智)가 임훈을 모시고 왔다. 함께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사인암(舍人巖)‚ 증각사(證覺寺)‚ 냉천정(冷泉亭)‚ 두솔사(兜率寺)‚ 입석암(立石庵)‚ 불가사의사(不可思議寺)를 유람한 뒤 염불암(念佛庵)에서 묵었다.
22일에는 원등사(元燈寺)‚ 천왕봉(天王峰)‚ 비로봉(毗盧峰)‚ 서석대(瑞石臺)‚ 금탑사(金塔寺)‚ 은적사(隱迹寺)‚ 옹성(瓮城)‚ 석문사(石門寺)‚ 금석사(錦石寺)‚ 대자사(大慈寺)‚ 광석대(廣石臺)‚ 자월암(慈月庵)‚ 청학대(靑鶴臺) 등을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유람하고 밤에 문수암(文殊庵)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묵었다.
23일에는 광석대(廣石臺)‚ 송하대(送下臺)‚ 방석보(方石洑)‚ 적벽(赤壁)‚ 오봉사(五峰寺)를 거쳐 소쇄원(瀟洒園)과 식영정(息影亭)을 들른 뒤 서하당(棲霞堂)에서 술을 마셨다.
24일에 일어나 다시 김성원의 별장인 식영정에서 술을 마시고 대취하여 소나무 아래 눕는 것으로 여정이 끝났다. 본 문헌은 단순한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유적의 연원과 사람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상세히 풀어쓴 문학 작품에 가깝다. 표제와 판심제는 ‘遊瑞石錄’이지만, 권수제가 ‘高霽峰遊瑞石錄’이므로 서명을 ‘고제봉유서석록’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판구에 대흑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간행 시기도 상대적으로 이를 수 있다. 다만 동종본이 여러 기관에 소장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