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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3_01_B00001_001
- ㆍ입수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유람기-복수지역
- ㆍ서명
- 호우선생유고 권3〜4 / 湖憂先生遺稿 卷三〜四
- ㆍ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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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내제
- /
- ㆍ권수제
- 호우선생유고 / 湖憂先生遺稿
- ㆍ판심제
- 호우선생유고 / 湖憂先生遺稿
- ㆍ저자
- 이환 저(李煥 著, 조선)
- ㆍ간행정보
- 간사지 未詳 간사자 未詳 간사년 未詳 서기년 왕력 추정시기 【1871년 이후】
- ㆍ형태정보
- 판종 목활자본 권수 4卷(2卷 零本) 책수 2冊(1冊 零本) 질 낙질 전 장_매 89장 절_면 책차 2 권차 3~4 점수 1 크기 32.5 × 21.2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유계 판구 白口 어미 內向2葉花紋魚尾 광곽 四周雙邊 반곽크기 23.1 × 15.7 단수 행자수 10行20字 주쌍행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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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항서 발 정의 조선후기 학자 이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1년(고종 8)에 이환의 후손들이 간행한 시문집(詩文集). 동국명산 백두산 남쪽에 있는 강원도 풍악산, 영남 태백, 소백산, 속리산, 지리산 등 주유명산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음. 주기사항
- ㆍ소장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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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장정 선장(線裝)
- ㆍ요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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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내용자료특성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국립산악박물관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환(李煥, 1582∼1661)의 문집이다. 저자의 후손들이 1871년 무렵에 간행했다. 본 문헌은 300여 편의 시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환의 자는 계명(季明), 호는 호우(湖憂),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부친은 이윤수(李潤壽)이고, 모친 풍산유씨(豊山柳氏)는 유중영(柳仲郢)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616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중단하고 용궁(龍宮: 경북 예천군)으로 돌아와 수양 공부에 전념하였다. 인조반정(1623) 이후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올랐지만 나아가지 않았고, 훗날 다시 목릉참봉(穆陵參奉)에 제수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호우유고』(湖憂遺稿)는 4권 2책이다. 본관 소장본은 이 중 제1책(권 1∼2)이 결본이다. 제1책의 내용은 본 문헌과 같은 자료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을 참고하였다. 권수에 유주목(柳疇睦, 1813∼1872)이 1871년에 지은 서문이 있다. 저자는 유성룡의 제자이고 유주목은 유성룡의 후손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유주목이 이 서문을 지었다. 서문에 의하면, 저자의 후손들인 이노태(李魯台), 이상범(李尙範), 이종욱(李鍾煜), 이기락(李基洛) 등이 본 문헌을 4권 2책으로 편집한 뒤, 본 문헌을 간행하기 위해 이복구(李復九)와 이동우(李東佑)를 보내 서문을 부탁했다.
권 1에 시 120여 편, 권 2에 시 12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 1의 「김겸가구한계정사시이경운기제」(金謙可求寒溪精舍十二景韻寄題)는 『경와집』(敬窩集)의 저자인 김휴(金烋, 1597∼1638)와 교유하는 내용이다.
권 2의 「호우정십육영」(湖憂亭十六詠)과 「又三十詠」에는 삼탄(三灘), 무송대(舞松臺) 등이 지명이 나온다. 삼탄(三灘)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낙동강, 내성천(乃城川), 한천(寒泉)이 모여드는 용궁(龍宮)의 청감호(晴鑑湖) 근처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권 3에는 시 60편, 명(銘) 2편, 전(箋) 1편, 기(記) 2편, 축문 4편, 제문 29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연경반력축사각지중이위지시헌력」(燕京頒曆縮四刻於百刻之中而謂之時憲曆)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 달력에 관하여 읊은 시이다.
권 4에는 제문 4편, 묘지명 6편, 묘갈명 4편, 행장 1편, 잡저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雜著)의 「납폐계」(納幣啓)는 인륜지대사인 혼인에 관하여 언급한 내용이다. 「격신여섭문」(檄申汝涉文)은 1627년 정묘호란 때 강원도사(江原都事) 종사관으로 있던 신즙(申楫, 1580∼1639)에게 보낸 격문이다. 여섭(汝涉)은 신즙의 자(字)이고, 저자와 신즙은 유성룡의 학문을 계승한 동문이다.
이 글은, 의병과 관군이 결합하면서 혼선이 일어나자, 양 진영을 잘 조율해서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하자는 내용이다. 「위용궁사민정순찰사급경차관서」(爲龍宮士民呈巡察使及敬差官書)는 용궁 지역 사람들을 대표해서 순찰사와 경차관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지역 관리의 농간으로 용궁 지역의 결부(結負)가 정확하지 않게 책정되어 세금의 부과가 공정하지 않으니 시정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 뒤에 나오는 「위일도사민정순찰사서」(爲一道士民呈巡察使書)도 같은 내용이다. 권말에는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저자의 「묘갈명」, 이대관(李大觀)이 지은 저자의 「묘지」, 이유장(李惟樟)이 지은 「유고후어」(遺稿後語)가 수록되어 있다. 본 문헌은 표제가 없고 권수제와 판심제는 호우선생유고(湖憂先生遺稿)이다. 서명은 관행에 따라 ‘호우유고’로 통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