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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30_01_A00045_001
- ㆍ입수처
- 소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99년 이성보 간찰 / 李城輔 簡札
- ㆍ발급자
-
이성보(李城輔)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99년 10월 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2크기 37.2 × 39.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99년 이성보가 비문과 관련된 사안으로 삼척심씨 일원에게 보낸 간찰과 간찰별지로 추정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799년 10월 5일 이성보(李城輔, 1738~1811)가 해운정(海雲亭)에 보낸 편지와 별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서늘한 가을철 지내시는 형편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위로된다고 하였다. 이성보 본인은 종형의 상을 당하여 매우 슬프다고 하여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마음을 표현하였다. 서전(書篆)에 있어서는 세상의 명필(名筆)이라는 것을 모두 아는 바이지만 사람이 어찌 어느 곳을 지적할 수 있겠냐고 하며 상대방 아들이 서울에 갈 때 널리 상의한 후 올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상대방 친족 아우의 인품이 매우 훌륭한 것을 언급하여 과거 공부 외에 독서를 매우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며 편지를 마쳤다.추신(追伸)으로 문어알은 며느리의 우환에 사용하였다고 하며 감사한 마음과 필묵(筆墨)은 인편이 부족하여 올려 보내지 못해 한탄스럽다는 뜻을 전하였다. 편지의 뒷면에 ‘해운정 집사 회납(海雲亭 執事 回納)’이라고 적혀 있어 강릉 해운정으로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두 장의 별지가 함께 배접되어 있는데, 하나는 해운정에서 인편에 부쳐 보내온 편지에 대하여 즉시 답장을 받아보고 싶으니 편지로 건숙(健叔)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며 백아(伯兒)의 편지는 받아보았다고 하는 내용이다. 나머지 하나는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의 저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에 대한 내용이다. 편지와 별지를 배접하면서 하단부를 가린 탓에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편지의 작성자인 이성보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종(維宗), 호는 중주(中洲) 또는 돈암(遯庵)이다.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도신(李度臣)이다. 1801년(순조 1) 대사헌에 올라 이름의 '성'자가 정조의 어휘(御諱)를 범하였다는 이유로 소(疏)를 올려 직보(直輔)로 개명하였다. 동몽교관(童蒙敎官), 익위사부수(翊衛司副率), 공조 참판(供造參判), 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였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해운정은 현재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정자로 조선 전기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있던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이 1531년에 건립한 것이다. 경포호(鏡浦湖)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심언광의 본관은 삼척(三陟), 자는 사형(士烱), 호는 어촌(漁村)이며, 증조부는 사정(司正)을 역임한 심충보(沈忠甫), 할아버지는 증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낸 심문계(沈文桂), 아버지는 예조 좌랑(禮曹佐郎)을 역임한 심준(沈濬)이다. 어머니는 사직 김보연(金普淵)의 딸 광산 김씨(光山金氏)이다. 해운정은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제목 없음
[1]
積阻瞻悵日深 春間一書付原判 聞已信傳 未知果不浮沈否 此雖答狀 而碑文依俯敎 一一添改以呈矣 其得領照否 卽伏承下札 以審秋淸 靜候神相增寧 區區不任仰慰之至 弟 自遭從兄喪患 孤露終鮮之懷 益無依庇 忽忽無人世意 小祥奄隔 數月摧痛 尙何言 書篆自得當世名筆 衆所共知之 人豈必自此間指某處耶 惟在令胤上京時 博詢詳議而往 令族弟人品果甚佳 今以科業之外 更加讀書專一 爲相勉之語等 臨發忙甚 姑不備 伏惟下照 謹謝上狀
己未 十月 初五日 弟 城輔 拜
文魚卵用於子婦憂患 甚爲感幸 而旣蒙厚眷 已多用矣 此後必勿勤念求送 如何
筆墨亦甚乏信便 無可仰呈 極可歉歎
(뒷면)
海雲亭 執事 回納
[2]
海雲亭送書付信便 卽欲見回答之意 書托健叔 如何 伯兒書受見
[3]
牧隱以崇德…稱之則一言之示 千秋但引此足矣 千秋而嘗見覽 但以詩名…海東名臣錄…載酒之語 而…用此語於碑…考而未見 則豈…無徵之歎耶…愼重者 而…今乃勉從 然幸…詳考於東文名… 而示之如何 此乃…愼重之道 想惟下諒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