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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25_01_A00037_001
- ㆍ입수처
- 황석홍(평해황씨)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산지문기(山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3년 박자홍 산지 매매 문기 / 朴者弘 山地賣買文記
- ㆍ발급자
-
박자홍(朴者弘,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황진사댁노 복만(黃進士宅奴 福萬,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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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903년 11월 2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0 × 2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903년 박자홍이 조상묘역의 일부를 매매한 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903년(광무 7) 11월 28일에 산주(山主) 박자홍(朴者弘)이 황진사댁(黃進士宅) 노(奴) 만복(福萬)에게 산지(山地)를 팔면서 발급한 산지매매문기이다. 문기는 조선 시대에 토지와 노비 등을 매매할 때 계약하기 위해 발급하는 문서이다. 토지와 노비 이외에 가사(家舍), 산지(山地), 송추(松楸), 시장(柴場), 우마(牛馬), 어장(漁場) 등 각종 재산을 매매할 때에 작성하였다.
첫 행에는 작성 시기, 매득인(買得人), ‘명문(明文)’을 기재하였다. 이어서 본문에는 권원(權原), 방매(放賣) 이유, 목적물 표시, 대금(代金) 수수(授受), 목적물 인도, 본문기(本文記) 허여 여부, 영매문언(永賣文言), 추탈담보문언(追奪擔保文言) 등을 수록하였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방매인(放賣人)·거래참여자의 성명과 서명(署名) 등을 기재하여 명문을 발급하였다. 산주 박자홍은 가난한 탓으로 서상(西上) 월굴리(月窟里) 능곡(陵谷)에 있는 선영(先塋)의 섬돌 아래에 가장 가까운 곳을 황진사댁 노 만복에게 팔았다. 산지가 있던 서상(西上) 월굴리는 현재 춘천시 서면(西面) 월송리(月松里)이다. 박자홍은 황진사댁 노 만복에게 산지의 가격으로 전문(錢文) 200냥(兩)을 받고 영원히 산지를 팔았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앞으로 만일 잡언(雜言)하는 폐단이 있으면 이 문기(文記)를 가지고 바로잡는다.’는 추탈담보문언을 기재하였다. 산지를 팔 때에 산주 박자홍, 명문을 작성한 필(筆) 박군보(朴君甫), 증인으로 참여한 엄군원(嚴君元)이 각각 착명(着名)을 하였다.
1903년 황진사댁(黃進士宅) 노(奴) 만복(福萬) 문기를 통해 1903년 당시 서상 월굴리 능곡에 있던 산지의 가격과 산지를 매매하는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산지를 사는 사람이 노비인 것을 통해 조선 후기에 양반을 대신하여 노비가 산지의 매매에 참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제목 없음
黃進士宅奴福萬前明文
右明文事段 以貧寒所致 西上月
窟里陵谷先塋階下至近之處
價折錢文二百兩 依數捧上是
遣 右宅前 永爲放賣爲去乎
日後如有雜言之蔽 則此文卞
呈者 癸卯十一月二十八日
山主 朴者弘[着名]
筆 朴君甫[着名]
證人 嚴君元[着名]
제목 없음
황진사(黃進士) 댁 노(奴) 복만(福萬) 앞(에게 주는) 명문.
우측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난한 까닭으로 인하여[以貧寒所致], 서상면(西上面) 월굴리(月窟里) 능곡(陵谷) 선영(先塋, 조상 무덤)의 섬돌 아래[階下] 아주 가까운 곳을 가격 200냥(錢文二百兩)으로 쳐서 수량대로 온전히 받았다[依數捧上是遣].
우측 댁(황진사댁) 앞으로 영원히 방매하니, 훗날 만약 딴말을 하는 폐단[雜言之蔽]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에) 바쳐[卞呈]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계묘년(癸卯年) 11월 28일
산주(山主) 박자홍(朴者弘) [착명(着名, 이름을 직접 씀)]
필(筆, 대필자) 박군보(朴君甫) [착명(着名)]
증인(證人) 엄군원(嚴君元) [착명(着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