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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25_01_A00033_001
- ㆍ입수처
- 황석홍(평해황씨)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3년~1834년 황도 간찰 / 黃燾 簡札
- ㆍ발급자
-
황도(黃燾, 1776~)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서울 장동에 거주하던 아들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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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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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1834년 11월 2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833년 5월~1834년 12월본문 至月 卄五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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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31 × 56.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1833~1834 추정) 11월 25일에 황도(黃燾, 177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미상년(1833~1834 추정) 11월 25일에 황도(黃燾, 177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스스로 ‘父’, 수급자에 대해 ‘너[汝]’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壯洞本家卽傳’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당시 서울 장동(壯洞) 본가에 있는 아들임을 알 수 있고, ‘慈牙平書’라는 기록 및 상단에 적색 정방형 관인이 답인되어 있는 정황 등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지명에 ‘자(慈)’가 들어가는 곳의 지방관으로 부임해 있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牙’는 ‘衙’와 통용하여 쓰인 글자로 관아를 의미한다. 황도의 관력을 통해 자산부사(慈山府使) 재직 당시 발급한 간찰로 추정 가능하다. 원폭의 배면에 후대의 기록인 “承旨公黃燾 外職時壯洞本第書札”은 ‘승지공 황도가 외직에 있을 때 장동의 본가에 보낸 서찰’이라는 의미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2일에 상대에게 보낸 편지는 아직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간 추위에 상대의 병세는 어떤지, 집안 안부도 한결같은지, 여러 곳의 소식도 무탈한지 등을 물었다. 자신은 이전대로 지내고 있으며, 환곡 다스리는 일[糴事]을 아직 마감하지 못해 고민된다고 했다. 지난 서찰에서 언급한 일은 모두 발기[件記]에 따라 하겠지만 전로(錢路)가 예상에 빗나간 듯한 점이 있음을 언급하였고, 세찬(歲饌) 건 중에 사야할 것은 반드시 여(呂)씨 벗이 가지고 있는 것을 쓰고, 궁차(宮差)가 바꿔 온 것은 잘 간직해 두고 기다렸다가 다시 지시하면 쓰라고 했다. 중오(中五)가 필시 27일에 상경할 것인데 전로를 구처하는 일은 그와 상의하여 처리하라고 하였고, 저인 수철이 우선 올라간다고 하므로 그를 통해 서찰을 부친다고 했다. 가을 상간에는 두 곳에 사초를 갈아야 하는데 물력이나 돈을 어찌 구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면서, 영흥(永興) 주인에게 들어갈 돈은 그간에 어찌 융통하여 썼는지 물은 뒤 25냥을 순철(順喆)을 통해 내어 주니, 이것 또한 융통하여 쓸 것이라고 했다. 오명긍(吳命兢)에게 세찬을 흥정하게 하여 마련한다면 그 돈을 그 일에 써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안부나 근황, 지방관으로서 업무 관련 정황, 세찬 준비나 선영에 사초를 가는 등의 의례 비용을 둘러싼 경제 운영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황도는 자는 덕무(德懋),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부친은 황상중(黃尙中)이다. 춘천 출신이다. 1874년(고종 11) 갑술 증광별시의 『사마방목』을 살펴보면, 황도의 아들로 생원에 입격한 이력이 있는 황기종(黃基鍾)이 확인되는데, 그의 생부는 황렬(黃烈)이고 황도는 양가 부친으로 확인된다. 황기종의 형제로 황기호(黃基鎬), 황기현(黃基鉉), 황기석(黃基錫), 황기명(黃基明)이 확인된다. 황도는 1810년(순조 10) 경오 식년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전적·예조좌랑·자여도찰방·감찰·지평·정언·장령·상례·자인현감·병조참의·승지·자산부사·영해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그는 1833년(순조 33) 5월 25일에 자산부사에 제수되었고, 1835년(헌종 1) 1월 18일 병비정사에서 군직으로 부호군에 제수된 것으로 보면 이때 상간에 체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간찰의 발급 월일이 11월 25일이므로 발급 연도는 1833 또는 1834년 겨울로 추정 가능하다.
- · 『承政院日記』 『國朝榜目』 卷9(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崇禎紀元後五甲戌增廣別試司馬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B13LB-37]) 『新增東國輿地勝覽』 卷51 平安道 『輿地圖書』 平安道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과거급제자
참고자료
제목 없음
[皮封] 壯洞本家卽傳/ 慈牙平書/ [上: 赤方印(官印)]]
卄二日付書 計未入見矣 此間寒事 一直不解 汝之病狀 更如何 家內亦如一例 而諸處消息 別無憂慮者否 竝切憂歎 此中依前 而糴事尙未得殺 可悶 向書中所示 一依件記 而錢路似有違料者 歲饌件所貿者 必以呂友許所存者用之 宮差所換者 堅置以待 更敎用之 可也 中五必於卄七上京 錢路區處 與之相議爲之也 邸人壽喆 先爲上去云 故玆付數字耳 秋間兩處改莎草 物力錢何以區處耶 永興主人許所用錢 未知其間推用 而二十五兩 又爲出給順喆 此亦推用者 若使吳命兢歲饌興成爲之 則以其錢用之 無妨耳 姑此
至月 卄五 父
[背面] 兄弟同見/ 承旨公黃燾 外職時壯洞本第書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