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81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소지류(所志類)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6년 박문형 등 상언의 사본 / 朴文亨 等 上言
- ㆍ발급자
-
박문형(朴文亨)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6.2 × 57.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대체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46년(헌종 12) 2월 강원도 강릉부 유생이 김동수金東秀(1788~1820)를 정려하는 포상을 요청하기 위해 헌종에게 올린 상언의 사본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46년(헌종 12) 2월 강원도 강릉부 유생이 김동수金東秀(1788~1820)를 정려하는 포상을 요청하기 위해 헌종에게 올린 상언. 강릉부 유생은 먼저 효를 정려하는 은전은 다스리고 교화하는 것의 근본임을 말하고, 김동수의 9대조 김담金譚(1522~1605)이 정려를 받고 삼강행실도에 수록된 것과 김담과 자손이 삼세사효三世四孝로 알려진 것을 소개하였다. 이어서 김동수가 어려서부터 효성이 있었고 가정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부모를 봉양하는데 전념하였으며 어머니의 병환에 지극히 효성을 다한 것을 언급하였다.
1816년(순조 16) 6월에 김동수는 어머니 남양홍씨의 병환에 밤낮으로 빌면서 간호하였으며 임종 직전에 손가락을 찢고 피를 입에 넣어 어머니를 연명延命하게 하였다. 어머니가 임종하자 매우 슬퍼하였으며 장례를 지낸 후에는 아침저녁으로 묘소에서 곡을 하였고 묘소 앞에서 진전進奠하는 것을 한결같이 하였다. 강릉부 유생은 이러한 김동수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에 대해 정려를 시행하여 포상하는 은전을 내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상언을 통해 김동수의 지극한 효행에 대해 정려받기 위해 강릉부 유생이 국왕에게 직접 상언을 올려 요청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