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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80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시문류-묘문(墓文)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윤봉조 김담 묘표 필사본 / 尹鳳朝 金譚 墓表
- ㆍ발급자
-
윤봉조(尹鳳朝, 1680~176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6.5 × 46.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대체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윤봉조(1680~1761)가 김담(1522~1605)의 효행·생애·선조·자손 등을 지은 묘표의 필사본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김담 묘표는 첫 행에 ‘김효자묘표金孝子墓表’로 시작하여 김담의 자字·호號·본관·세거 등을 수록하고 김효자로 칭송을 받게 된 지극한 효성을 소개하였다. 김담의 효성에 대해서는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부모의 봉양에 전념하였으며 부모상을 당하여 몹시 슬퍼하고 통곡하며 3년 동안 부모의 묘소를 지키고 예를 극진히 하여 하늘을 감동시킨 사연을 서술하였다. 또한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강릉부사가 되어 김담의 효행을 추천하고 시문을 지었으며 조정에서 관직을 내려 포상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이어서 김담의 생몰년·향년·선조·배配·자손 등을 서술하고 김담의 아들 김경황金景滉(1549~1623)·김경시金景時와 손자 김한金垾(1578~1663)이 효성으로 정려가 되어 ‘삼세사효三世四孝’의 가문으로 빛나게 된 사실을 언급하였다. 김담 묘표에는 김담의 이름뿐만 아니라 선조와 자손의 이름을 쓰지 않고 ○로 표시하였는데 후대에 후손이 묘표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김담 묘표는 윤봉조의 문집인 포암집圃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