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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74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상서(上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미상인 소록 / 小錄
- ㆍ발급자
-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1.8 × 40.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강릉의 고故 사인士人 김동수金東秀(1788~1820)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 포상받기 위해 보낸 소록으로 B017_01_A00275_001과 같은 문서라 할 수 있다. 상서를 올리기 이전에 혹은 상서와 관련해서 필요한 내용을 간단히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강릉의 고故 사인士人 김동수金東秀(1788~1820)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 포상받기 위해 보낸 소록. 소록의 내용은 김동수 선대의 효행과 김동수의 효행을 서술하여 앞에서 살펴본 소록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김동수의 가문은 관동 지역에서 명망이 있고 대대로 효행으로 널리 알려져서 9대조 김담金譚(1522~1605)이 효행으로 선조 연간에 포상을 받아 정려된 일이 삼강행실도에 수록되었고 송시열(1607~1689)이 김담의 효행에 대한 발문跋文을 지었다. 그 후에 3세世가 모두 효행으로 정려를 받아 사효지문四孝之門으로 칭송받았다.
김동수는 어려서부터 효도와 우애가 있었고 가정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부모를 봉양하는데 전념하였다. 1816년(순조 16)에 어머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위독하자 밤낮으로 자신이 대신하기를 빌면서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임종하고 매우 슬퍼하였으며 장례를 지낸 후에 아침저녁으로 묘소에서 곡을 하고 진전進奠을 한결같이 하였다. 김동수의 효행에 대해 강원도의 유생들이 여러 번 고을과 감영에 상서上書를 올려 요청하였으나 정려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성대한 세상에 흠이 되는 일이라 하고 있다.
매번 식년式年에 각 도에서 효행과 청렴의 선비를 국왕에게 계문啓聞할 때에 김동수의 지극한 효행을 추천하여 많은 선비의 공의公議에 부응을 할 것을 요청하였다. 소록을 통해 김동수의 지극한 효행과 주변 지역에 널리 알려진 모습, 그리고 관동 지역에서 정려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