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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70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토지문기(土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7년 한석리 밭 매매 문기 / 韓錫履 田賣買文記
- ㆍ발급자
-
한석리(韓錫履)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7년 7월 3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十五年丁酉七月三十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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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55 × 3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37년(헌종 3) 7월 30일 전주田主 한석리가 강릉김씨 김영유 가문에 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 매매 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37년(헌종 3) 7월 30일 전주田主 한석리가 강릉김씨 김영유 가문에 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문기다. 문기는 조선시대 토지와 노비 등을 사고 팔 때 발급하는 매매문서이다. 한석리는 흉년으로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어서 김영유 가문에 전문錢文 30량을 빌려 쓰고 매년 이자를 갚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부득이하게 이자를 갚을 수 없어서 자신이 소유한 밭을 김영유 가문에 팔게 되었다. 한석리가 매매한 밭은 안미安味(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에 있는 충자원忠字員 제76전田으로 밭의 면적은 원전元田 7복卜과 마전麻田 1일경日耕이고, 밭의 가격은 전문 35량과 소출된 청마靑麻 40단丹이었다. 밭의 사표四標는 동쪽에 이대관李大官의 밭이 있고 서쪽에 박열영朴悅榮의 밭이 있으며 남쪽에 이흥발李興發의 밭이 있고 북쪽에 작은 도랑이 있었다. 이전에 거래한 매매문서인 본문기本文記는 해당 밭을 나누어 팔 때 다른 사람에게 함께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줄 수 없다고 했다. 후일에 다시 잡담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옳고 그름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을 수록하였다. 명문은 밭의 주인 한석리가 직접 작성하고 착명着名을 하였으며 증인은 박朴이 참여하였으나 상중이라서 착명하지 않고 상불착喪不着이라고 기재하였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도가堵價는 청마靑麻 70속束으로 정해서 납부한다는 내용을 추가로 기재하였다. 밭을 매매한 후에도 한석리가 농사를 짓고 소작료를 납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을 통해 김영유 가문에서 한석리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으며, 밭을 구입한 후에는 한석리에게 매년 소작료를 받아서 가계 운영의 기반을 마련한 것을 볼 수 있다.
원문 / 국역
道光十五年丁酉七月三十日. 前明文.
右明文爲臥乎事段. 吾以歉凶, 生活無路, 右宅, 錢文參拾兩
出用以後, 利條每年報上是如可, 自今年, 不得已, 安味忠字員第七
十六田, 元田七卜廤, 麻田一日耕, 折價錢文參拾伍兩, 及所出靑麻
四十丹, 幷以利本, 右宅前, 放賣爲去乎. 四標則東李大官田, 西
朴悅榮田, 南李興發田, 北小渠, 標內明白. 而本文記則同此田
分賣時幷給, 故不得付送, 若或日後更有雜談是去等, 持此
文記, 告官卞正印. 堵價則靑麻七十束定納印.
田主 自筆 韓錫履[着名]
證人 朴 喪不着
도광 15년 정유(1873) 7월 30일. 전 명문.
이 명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흉년으로 생활할 방법이 없어서 이 댁에 전문錢文 30량을 내서 쓴 후에 이자를 매년 갚다가 올해부터 부득이 하여 안미安味 충자원忠字員 제76전田 원전元田 7복卜, 마전麻田 1일경日耕을 전문 35량 및 소출되는 청마靑麻 40단丹으로 값을 정하여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으면서 이 댁에게 방매放賣합니다. 사표四標는 동쪽에 이대관李大官의 밭이 있고 서쪽에 박열영朴悅榮의 밭이 있으며 남쪽에 이흥발李興發의 밭이 있고 북쪽에 작은 도랑이 있어 표標 안이 명백합니다. 본문기本文記는 이 밭을 나누어 팔 때 함께 주었기 때문에 보내줄 수 없으며 만약 혹 앞으로 다시 잡담이 있으면 이 문기文記를 가지고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입니다.
도가堵價는 청마靑麻 70속束으로 정하여 납부합니다.
전주 자필 한석리[착명]
증인 박 상불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