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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47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19년 최영국 간찰 / 崔永國 簡札
- ㆍ발급자
-
최영국(崔永國, 1877~193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미상인(?~?,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919년 1월 7일간지연도: 己未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17.5 × 55.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기미년(1919) 1월 7일에 제(弟) 최영국(崔永國, 1877~1938)이 미상인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기미년(1919) 1월 7일에 제(弟) 최영국(崔永國, 1877~193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평교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앞부분은 결락이 심하여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상대측의 안부와 근황에 관한 언급이 있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새해의 경사라고 하였다. 본론으로, 상대 며느리의 풍습(風濕) 병은 좋은 화제와 영약을 얻어 근래에 쾌복했는지 묻고는 매우 염려된다고 했다. 상대에게 부탁한 중매[氷言]에 관한 일은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형보(亨甫) 형이 지난 연말에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는데 잘 돌아왔는지 묻고는 요즘 세상은 경향(京鄕) 간을 다니는 일이 문지방 드나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면서, 그간 ‘정월이 이롭다[正利]’는 설을 상대 가문의 족씨(族氏)에게 품달해 드렸는지 물었다. 그리고 도요(桃夭)의 절기가 점차 이르니 제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모두 상대가 부지런히 설명해야 한다고 하면서, 옛 사람이 ‘혼사는 좋은 중매인에게 달려있다’고 한 말처럼 그 좋은 중매인이 상대 말고는 누가 있겠냐고 했다. 따라서 온갖 방법으로 유도하여 인연을 맺어주길 당부하였다. 자신이 상대를 직접 찾아가 부탁해야 하나 눈이 많이 내려 그러지 못했음을 언급하며 혼사는 실로 힘써 이루기 어려운 일이어서 말이 맞지 않고 계획이 쓰이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냐고 하며 다음 인편을 통해 가약을 맺는 일을 속히 회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본문에서 언급된 ‘빙언(氷言)’은 옛날 영호(令狐)라는 사람이 얼음 위[氷上]에 서서 얼음 아래의 사람[氷下之人]과 말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를 두고 색담(索紞)이라는 사람이 “양이 음과 대화한 것이므로 중매를 주관하는 일이 된다.[爲陽語陰 主媒介事]”라고 말한 데서 온 말로 혼사의 중매를 서는 일을 가리킨다. 『신편척독대방(新編尺牘大方)』 29장 「위자탁혼(爲子託婚)」 조를 살펴보면 이는 일반적으로 아들의 혼사에 대한 중매를 부탁할 때 사용하는 격식과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황상 발급자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혼사를 부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정리지설(正利之說)”은 정확한 전거는 미상이다. 본문 내용의 골자가 혼사를 추진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길일을 택하는 것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즉 신랑과 신부의 사주단자로 일관(日官)을 통해 연길(涓吉)을 복정하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이때 일관이 “이들의 혼사는 정월에 하는 것이 이롭다[正利]”고 한 말을 중매의 역할을 하고 있던 상대를 통해 신부측인 문천(文川) 댁으로 알리고자 했던 정황으로 추정된다.
이 간찰은 번 <무오년(1918) 11월 18일 최돈항(崔燉恒) 간찰> 및 번 <최돈항(崔燉恒) 별지>, 번 <무○년(1918) 11월 22일 최영국(崔永國) 간찰> 간찰과 내용상 일괄문서로 파악해야 한다. 앞서 최돈항의 간찰과 별지에서 언급된 ‘학여(學汝)’는 최영국의 자로서, 1918년 11월 18일에 최돈항은 최영국의 아들과 강릉 김씨 일족인 문천(文川) 댁의 딸과의 혼사에서 수신자에게 중매를 부탁하였고, 1918년 11월 22일에는 최영국이 직접 수신자에게 중매를 언급하였으며, 이 간찰에서도 중매를 언급하고 혼삿날을 언급하고 있어서 혼사가 아직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무오년 간찰과 이 간찰에서 모두 언급된 ‘형보 형’은 자세한 인명은 미상이다. 정황상 최돈항(崔燉恒)과 같이 이 혼사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로 추정된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상대 며느리의 풍습병에 관한 물음[令子婦之風濕之病 幸得良劑靈藥 近得快蘇否]”은 무오년 최돈항 간찰에서 언급된 “상대의 며느리이자 자신의 종질녀의 종증[令婦阿從媳之瘇症]” 및 번 <즉일 최돈봉(崔燉鳳) 간찰>, 번 <병○년 11월 14일 최돈봉(崔燉鳳) 간찰> 등에서 “저의 여식[迷媳]”이라는 언급과 딸의 혼사[衣籠之行]를 추진하고 있는 정황 등의 내용을 토대로 종합 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최돈봉과 최돈항은 종반관계이고, 앞서 병진년(1916)에 최돈봉의 딸과 강릉 김씨 김두남(金斗南)의 아들 김덕래(金德來)와의 혼사가 추진되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오년(1918)과 기미년(1919)에 최영국이 자신의 아들의 혼사를 위해 방문하고 최돈항이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하기를 언급한 상대(수신자 측) 역시 김두남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최영국이 병증을 물어본 ‘令子婦’는 최돈봉의 딸이자 김두남의 며느리로 추정할 수 있다.
발급자 최영국은 『강릉최씨대동보』 권3 용연동파에 세계에서 확인되는 익민(益敏)-병구(秉球)-윤적(允積)으로 이어지는 동명인으로 추정된다. 자는 학여(學汝), 호는 소은(紹隱)으로 의관(議官)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릉최씨 문중의 항렬자가 “永-集-燉-圭”의 순번으로 되어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 최돈항‧최돈봉은 최영국의 족손(族孫) 항렬이 된다.
- · 『江陵崔氏大同譜』, 『新編尺牘大方』(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전원문자료관), 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참고자료
원문
■…■不何■…■樣子 是爲新歲之慶貺耳 就悚 令子婦之風濕之病 幸得良劑靈藥 近得快蘇否 貢慮不尠者也 仰囑氷言 不置忘域耶 仄聞則亨甫兄臘尾還第云 果得利稅否 當此世界 京鄕出沒 無異戶庭也 這間以正利之說 稟達于貴門貴族氏乎 桃夭之節漸臻 不失時期 都在尊兄之勤勉說明 則古人云親事在於良媒 而以良媒言之 則非尊兄誰乎 萬端誘癢 以結缺界團緣 豈不美哉 事當躬晉面囑 而緣於尺雪之作魔 末由遂誠 以此垂鑑 甚好甚好 然親事實難力致之事 言不合計不用 奈何 從其便梯 以佳期之事 速爲回示 千萬顒祝耳 餘在迓新萬祺 不備候禮 己未 一月 七日 弟 崔永國 相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