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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40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최돈봉 간찰 / 崔燉鳳 簡札
- ㆍ발급자
-
최돈봉(崔燉鳳, 1881~191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미상인(?~?,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미상년 7월 6일간지연도: 丙?왕력:추정시기: 병진년 1916년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17.6 × 35.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병진년 1916년 추정) 7월 6일 낮에 죄제(罪弟) 최돈봉(崔燉鳳, 1881~1918)이 미상인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병○년(병진년 1916년 추정) 7월 6일 낮에 죄제(罪弟) 최돈봉(崔燉鳳, 1881~191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罪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면서 친상(親喪)을 당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는다.
앞부분은 결락이 심하여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상대측의 편지를 받은 상황에 대한 서술이 있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시전(侍奠)드리며 지내는 상대 및 가족들의 안부와 근황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질긴 목숨 연명하며 살아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예전대로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가 보내준 참외[甘苽]는 어제 자신도 보냈는데 오늘 왔다고 하면서 이는 이른바 예의상 서로 왕복하는 것이냐고 하며 우습다고 했다. 덕 랑(悳郞)이 와서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부터 돌아가기를 언급하기에 만류했다고 하였다. 마침 상대에게로 돌아가는 인편은 만나 혐의쩍은 일을 내었으니 형세가 그러하여 어찌할 수 없다고는 하나 스스로 섭섭하다고 했다.
발급자 최돈봉은 『강릉최씨대동보』 권3 용연동파(龍淵洞派)에서 확인되는 ‘윤기(允杞)-영찬(永瓚)-경집(慶集)’으로 이어지는 동명인으로 추정된다. 초휘는 돈식(燉軾), 자는 응소(應韶), 호는 우파(又坡)‧오파(梧坡), 배위는 강릉 김씨(江陵金氏) 김연용(金演鎔)의 딸이다. 3남 1녀를 두었는데, 딸이 강릉 김씨 김두남(金斗南)의 아들 김덕래(金德來)와 혼인하여 슬하에 김재홍(金載泓)을 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이것이 만일 맞는다면 수신자는 김두남, 사위인 ‘덕 랑’은 김덕래로 볼 수 있다. 또한 발급자는 당시 삼년상을 치르는 과정이었기에 스스로를 “죄제”라고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부친인 경파(鏡坡) 최경집(崔慶集, 1853~1915)의 몰년이 을묘년인 1915년이고, 딸의 혼사가 논의되고 이루어진 해가 1916년으로 본다면 발급연도인 병○년은 병진년인 1916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 · 『江陵崔氏大同譜』, 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참고자료
원문
■…■ 侍奠體上冲支 寶■(覃)均吉 何等慰荷 罪弟 頑狀與諸他姑昨而已耳 就惠饋甘苽 昨去今來 此所謂禮相往來者耶 捧腹 悳郞來留未幾 自朝言歸 故以期爲挽矣 適見歸便 納履以出 勢也無奈 只自薪悵 餘迷不備疏 丙 七 晝 六日 罪弟 崔燉鳳 拜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