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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37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최영국 간찰 / 崔永國 簡札
- ㆍ발급자
-
최영국(崔永國, 1877~193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미상인(?~,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 戊?왕력:추정시기: 무오년 1918년본문: 戊之至月二十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17.5 × 5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무?년(무오년 1918년 추정) 11월 22일에 제(弟) 최영국(崔永國, 1877~1938)이 미상인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무○년(무오년 1918년 추정) 11월 22일에 제(弟) 최영국(崔永國, 1877~193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는다. 본문에서 언급된 ‘빙하지언(氷下之言)’은 옛날 영호(令狐)라는 사람이 얼음 위[氷上]에 서서 얼음 아래의 사람[氷下之人]과 말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를 두고 색담(索紞)이라는 사람이 “양이 음과 대화한 것이므로 중매를 주관하는 일이 된다.[爲陽語陰 主媒介事]”라고 말한 데서 온 말로 혼사의 중매를 서는 일을 가리킨다. 『신편척독대방(新編尺牘大方)』 29장 「위자탁혼(爲子託婚)」 조를 살펴보면 이는 일반적으로 아들의 혼사에 대한 중매를 부탁할 때 사용하는 격식과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황상 발급자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혼사를 부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간찰은 번 <무오년(1918) 11월 18일 최돈항(崔燉恒) 간찰> 및 번 <최돈항(崔燉恒) 별지>, 번 <기미년(1919) 1월 7일 최영국(崔永國)> 간찰과 내용상 일괄문서로 파악해야 한다. 앞서 최돈항의 간찰과 별지에서 언급된 ‘학여(學汝)’는 최영국의 자로서, 1918년 11월 18일에 최돈항은 최영국의 아들과 강릉 김씨 일족인 문천 댁의 딸과의 혼사에서 중매를 부탁하였고, 이 간찰이 발급된 11월 22일에는 최영국이 직접 중매를 언급하였으며, 뒤에 나오는 1919년 1월 7일까지도 중매를 언급하고 혼삿날을 언급하는 순서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간찰과 기미년 간찰에서 모두 언급된 ‘형보 형’은 자세한 인명은 미상이다. 정황상 최돈항(崔燉恒)과 같이 이 혼사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로 추정된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상대 어머니[萱堂]의 종증(瘇症)’에 관해서는 기미년 발급 간찰에서 언급한 “상대 며느리의 풍습병에 관한 물음[令子婦之風濕之病 幸得良劑靈藥 近得快蘇否]”과 함께 검토 해 볼 만한 부분이다. 이는 위 무오년 최돈항 간찰에서 언급된 “상대의 며느리이자 자신의 종질녀의 종증[令婦阿從媳之瘇症]” 및 번 <즉일 최돈봉(崔燉鳳) 간찰>, 번 <병○년 11월 14일 최돈봉(崔燉鳳) 간찰> 등에서 “저의 여식[迷媳]”이라는 언급과 딸의 혼사[衣籠之行]를 추진하고 있는 정황 등의 내용을 토대로 종합 해 보면, 최돈봉과 최돈항은 종반관계이고, 앞서 병진년(1916)에 최돈봉의 딸과 강릉김씨 김두남(金斗南)의 아들 김덕래(金德來)와 혼사가 추진되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간찰이 발급된 해에 최영국이 자신의 아들의 혼사를 위해 방문하고 최돈항이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하기를 언급한 상대(수신자 측) 역시 김두남으로 보이며, 따라서 최영국이 위의 본문과 기미년 간찰에서 각각 병증을 물어본 ‘萱堂’과 ‘令子婦’는 모두 최돈봉의 딸이자 김두남의 며느리로 추정된다. 물론 ‘훤당’과 ‘자부’의 층차가 확연하지만, 정황상 최영국이 처음에는 상대 며느리의 종증을 ‘훤당의 종증’으로 잘못 오인하여 이렇게 기록 했던 것 같고, 따라서 그 다음 편지에서는 다시 ‘영자부의 풍습증’으로 수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급자 최영국은 『강릉최씨대동보』 권3 용연동파에 세계에서 확인되는 익민(益敏)-병구(秉球)-윤적(允積)으로 이어지는 동명인으로 추정된다. 자는 학여(學汝), 호는 소은(紹隱)으로 의관(議官)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릉최씨 문중의 항렬자가 “永-集-燉-圭”의 순번으로 되어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 최돈항‧최돈봉은 최영국의 족손(族孫) 항렬이 된다. 원문에서 “它無仰挽”의 ‘挽’은 문맥상 ‘浼’의 오기로 볼 수 있다.
상대를 만났던 이후로 편지나 면대 모두 격조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요즘 눈 내린 뒤끝에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상대의 체후와 형제분들, 친족 각 댁의 안부를 차례대로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그럭저럭 예전대로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상대 어머니[萱堂]의 종증(瘇症)은 좋은 화제와 영약을 얻어 근래에 쾌복하셨는지 묻고는 매우 염려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에 부탁했던 중매[氷下之言]에 관한 일은 혹여 잊어버리진 않았는지 묻고는,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의 집안 형편으로는 상대의 은혜에 달려있지 않겠냐고 하면서 온갖 방식으로라도 잘 이끌어내어 주시길 바란다고 하였다. 형보(亨甫) 형은 근래에 집으로 돌아왔는지 묻고는 상대에게 직접 가서 간청해야 하지만 여러 가지 바쁜 일 때문에 그러지 못하니 양해 해 달라고 했다.
- · 『江陵崔氏大同譜』, 『新編尺牘大方』(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전원문자료관), 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참고자료
원문
奉晤以後 書面俱阻 瞻仰之誠 無乃不深者也 謹未審玆際雪後 侍餘體候 連棣萬祺 花樹諸軒 各得泰和否 幷伏■■(慰且)祝 不任勞禱 弟 侍事觕依前樣 是庸幸耳 就悚 令萱堂腫症 果得良劑靈藥 近得快蘇否 遠外貢慮 不啻者也 它無仰挽 而前者所托氷下之言 果不置忘域耶 蓬蓽生計 不在於尊兄之眷愛 則萬端誘癢 無至失望之地 萬萬伏企伏企 亨甫兄近間還第否 乃時佇望者也 事當躬晉申懇 而緣於諸擾 未得遂誠 則以此恕諒之地 千萬顒祝耳 餘姑閣不備候禮 戊之至月二十二日 弟 崔永國 相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