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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31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김익남 간찰 / 金翼南 簡札
- ㆍ발급자
-
김익남(金翼南,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미상인(?~?,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미상년 8월 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918년 8월 4일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7.6 × 33.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1918년 추정) 8월 4일에 사제(舍弟) 김익남(金翼南)이 미상인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사형(舍兄)에게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년(1918년 추정) 8월 4일에 사제(舍弟) 김익남(金翼南)이 미상인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사형(舍兄)에게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舍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수신자는 친아우이고, 이 간찰이 강릉 김씨 문중 문서임을 감안하여 ‘翼南’은 ‘金翼南’임을 알 수 있다. 보통 서간 등에서 발급자가 ‘弟’로 표현하는 경우는 평교간에서 자신을 상대보다 낮추는 겸사로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아우’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종반관계는 ‘從弟’, 친아우는 ‘舍弟’ 또는 ‘家弟’로 표현한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는다.
요즘 서늘한 기운이 드는 때에 어머님의 기체후는 좋으신지, 형님의 안부와 집안의 제절도 모두 좋은지 안부를 묻고는 그립다고 했다. 자신은 지난번 절하고 물러나온 뒤 5일 만에 어제 저녁에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고 하면서, 이곳 사람들도 모두 편안하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배운 바에서 저촉되는 부분이 많으니 늦어버린 탄식이 있다고 하였다. 동료 최(崔)씨 또한 잘 지낸다고 하였다. 추록은 두 가지 사항을 적었다. 하나는, 신리면(新里面) 교항리(橋項里) 작은댁의 전(錢) 2원(圓)을 찾았으나 4원 금은 이 또한 빌려오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하면서 양해 해 달라고 하였다. 다른 하나는, 정택호(鄭宅鎬)에게도 이러한 말을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간찰은 계선이 인쇄된 규격화된 종이에 작성되었는데, 판심에 해당하는 부분의 하단에 “江原道蠶業講習所”가 인쇄되어 있어서 해당 단체에서 소용된 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발급자나 가족 일원 가운데 이 강습소의 직원이나 졸업자가 있었을 수 있다. 또한 이 강습소는 대정2년(1913) 3월 11일자 「조선총독부관보」 <지방청공문(地方聽公文)>에 실린 “조선총독부강원도령제3호”로 상정‧공포된 ‘강원도잠업강습소규정’을 살펴보면, 설립연도는 관보의 발행연월일과 같고, 위치는 춘천군 부내면(府內面), 직원은 주임(主任)‧교사(敎師)‧조수(助手)‧통역(通譯)을 두고 있으며, 치잠공동사육소(稚蠶共同飼育所)와 성견공동판매조합(成繭共同販賣組合)과 같은 사업소와 연계하여 교사 양성, 지도, 시험, 조사, 수료자 취업 지도, 사업 지도 등의 사업 추진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강습기간은 10개월, 정원은 30명이고 지원자 요건은 17세 이상 45세 이하의 남성이어서 이와 함께 설립된 잠업전습소(蠶業傳習所)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그리고 부속된 기숙사도 운용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정황들을 토대로, 본문에서 발급자가 스스로 ‘상대를 뵌 뒤 객지의 자신이 있는 곳에 물러나왔다’, ‘자신이 배운 바에 저촉되는 점이 많다’, ‘동반(同伴) 최(崔) 상[樣]도 잘 지낸다’고 하는 등의 언급, 동일 발급자의 여타 간찰 가운데 번 <기미년(1919) 정월 2일 김익남(金翼南) 간찰>에서 스스로 ‘타군(他郡)에서 동접(同接)들과 고락(苦樂)으로 지낸다’는 근황을 언급하고 있는 내용 등과 함께 유추 해 보면, 발급자는 당시 춘천 소재의 위 강습소에서 수학하거나 또는 사육소나 판매조합 등의 사업소에 취업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되며, 만일 그가 강습생의 신분이었다면 번 <대정 8년(1919) 2월 6일 서병의(徐丙懿) 간찰>을 통해 최소한 1919년 2월까지도 동일한 신분이 유지된 정황이 있으므로, 강습소 규정에서 강습기간이 10개월임을 감안하면 이 간찰의 발급연도를 1918년으로 추정 가능하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최 상(崔樣)’의 경우 번 <대정 7년(1918) 4월 24일 최운집(崔雲集) 간찰>에서 발급자 최운집이 수신자 측에 잠망기(蠶網機)와 잠망(蠶網)을 빌린 사실이 확인되므로 ‘최운집’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1918년 4월 중순경에는 강습소에 입학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듬해 1919년 2월 중순 이후면 수료 대상자에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추정 가능하다. 최운집은 자세한 인명은 미상이나 “永-集-燉-圭”로 이어지는 강릉 최씨 문중의 항렬자를 통해 이 문중의 일원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 김익남은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강릉 김씨 문중 일원으로서 여타 간찰들에 등장하는 김두남(金斗南), 김용남(金容南) 등과 동항의 형제 또는 종반관계로 추정된다.
- · 『江陵崔氏大同譜』, 「朝鮮總督府官報」 <大正2年(1913) 3月 11日>(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고자료
원문
舍兄主前上書 伏未審辰下 新涼入墟 慈母主氣體候 一向萬康 舍兄主體度 宅內諸節 亦得均吉 伏慕區區且祝 舍弟 拜退後五日間 昨暮歸所 則所內一安 益爲私幸耳 諸觸之所學之上多 有晩到之歎也 同伴崔樣 亦得安保耳 餘續后 不備上書 八月 初四日 舍弟 翼南 拜 新里面橋項里小宅錢貳圓則取尋 而四圓金 是亦爲貸來也 如何 下諒焉 鄭宅鎬許 以是言告之地 伏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