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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223_001
- ㆍ입수처
- 김영유(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18년 최돈항 간찰 / 崔燉恒 簡札
- ㆍ발급자
-
최돈항(崔燉恒,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미상인(?~,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918년 11월 18일간지연도: 戊午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17.5 × 50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무오년(1918) 11월 18일에 죄제(罪弟) 최돈항(崔燉恒)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무오년(1918) 11월 18일에 죄제(罪弟) 최돈항(崔燉恒)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罪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면서 친상(親喪)을 당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는다.
지난 그믐날 자신의 친족인 학여(學汝) 씨가 상대 집안에 들러 묵고 온 편으로 근래의 안부를 대략 들었다고 하면서,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형제분들 및 가족, 아들 형제의 안부와 요사이 돌림병이 치성하여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상대 집안은 괜찮은지 등의 근황을 물었다. 이어서, 자신은 완악한 목숨만 이어가고 지내고 있고, 집안의 여러 안부는 우선 잘 지내고 있으며, 상대의 며느리의 종증(瘇症)은 조금 낫긴 했으나 아직 완쾌하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상대가 의원을 분주히 다니며 바르거나 먹는 등의 약들을 지어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도리어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했다. 그의 병이 비록 완쾌하지는 못했어도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매우 편안하게 지내니 우선 이 달 20일 이후에나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하였다. 나머지 사연은 협지에 적어두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당시 병에 대한 인식과 대처 및 의료에 관한 실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동 문중 소장 간찰 가운데 번 별지에 “나의 친족 학여 씨가 지난번 집사께 방문했을 적에 형에게 중매를 부탁하면서 귀측 친족인 문천 댁을 이야기했었다고 한다.[鄙族學汝氏向晉時 囑兄論柯 說于貴族文川宅云]”라고 언급하는 내용이 있어 이 간찰의 말미에 언급한 태지(胎紙)가 위의 별지로 추정된다. 또한 ‘학여 씨’는 『강릉최씨대동보』 권3 용연동파(龍淵洞派) 세계를 살펴보면 자가 학여(學汝), 호가 소은(紹隱)으로 의관(議官)을 지낸 최영국(崔永國, 1877~1938)이 확인된다. 실제로 혼사의 중매를 부탁하는 내용의 간찰로서 번 <무○년 11월 22일 최영국(崔永國) 간찰>, 번 <기미년 1월 7일 최영국(崔永國)> 간찰이 있다.
그리고 본문 가운데 언급된 “상대의 며느리이자 자신의 종질녀의 종증[令婦阿從媳之瘇症]”의 경우 또한 동 문중 간찰 가운데 번 <즉일 최돈봉(崔燉鳳) 간찰>, 번 <병○년 11월 14일 최돈봉(崔燉鳳) 간찰> 등에서 “저의 여식[迷媳]”이라는 언급과 딸의 혼사[衣籠之行]를 추진하고 있는 정황, 번 최영국 간찰에서 “상대 훤당의 종증에 관한 물음[令萱堂腫症 果得良劑靈藥 近得快蘇否]”, 번 최영국 간찰에서 “상대 며느리의 풍습병에 관한 물음[令子婦之風濕之病 幸得良劑靈藥 近得快蘇否]” 등의 내용을 토대로 종합 해 보면, 최돈봉과 최돈항은 종반관계이고, 이 간찰이 발급되기 약 2년 전인 병진년(병○년을 병진년인 1916으로 추정함)에 최돈봉의 딸과 수신자의 아들의 혼사가 추진되었으며, 최영국이 무오년(무○년을 무오년인 1918년으로 추정함)과 기미년(1919)에 각각 병증을 물어본 ‘萱堂’과 ‘令子婦’는 모두 최돈봉의 딸로 추정된다. 특히 최영국 간찰에서 언급된 ‘훤당 종증’은 아마도 당시 ‘영자부의 종증’을 잘못 듣고 기록 했던 것 같고, 따라서 그 다음 편지에서 다시 ‘영자부 풍증’으로 수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돈봉은 위에서 언급한 『강릉최씨대동보』 권3 용연동파에서 ‘윤기(允杞)-영찬(永瓚)-경집(慶集)’으로 이어지는 동명인이 확인되는데, 그의 딸이 강릉 김씨 김두남(金斗南)의 아들 김덕래(金德來)와 혼인하여 슬하에 김재홍(金載泓)을 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이것이 만일 맞는다면 수신자는 김두남으로 볼 수 있지만 미상이다.
- · 『江陵崔氏大同譜』 『新編尺牘大方』(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전원문자료관)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참고자료
원문
稽顙言 客晦鄙族學汝氏歷宿貴■(門)■(而)來 槩聞近節之安 稍慰願言之懷也 且伏未審伊來 侍餘棣體萬綏 潭度百福 允君昆季 亦侍重善工 哀溸區區且祝 近日時祟之輪熾 無人不被 貴庄幸不罹此毒耶 抑又願聞 罪弟 慈依頑延 大舍諸節姑遣 而令婦阿從媳之瘇症 若有少可 尙未快效 見甚悶憐耳 亦想吾兄之奔汨於宜門 劑送塗服之藥 非一非再 還甚不安于中耳 渠則瘇症 雖未快祛 或留太久 甚爲恬然 姑將以今念後 歸覲爲計耳 餘在胎 荒迷 不備疏上 戊午 至月 旬八日 罪弟 崔燉恒 拜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