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B017_01_A00091_001
- ㆍ입수처
- 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김영유)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미상인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
김계원(金啓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미상인(?~?)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윤월월 2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5.5 × 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년 윤월 27일에 종제(宗弟) 김계원(金啓源)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을○년 윤월 27일에 종제(宗弟) 김계원(金啓源)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宗弟’로 표기하여 수신자와는 같은 문중(강릉김씨) 출신의 종친 관계를 나타내었으므로 ‘啓源’은 ‘金啓源’임을 알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長峴 宗弟 候狀’이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장현(長峴)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현은 강릉 소재의 지명이다. 또한 그 우측에 수신자에 관한 사항으로서 ‘鄕射堂 執事 入納’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향사당(鄕射堂)은 유향소(留鄕所, 鄕廳)를 가리킨다. 유향소는 향사음례(鄕射飮禮, 鄕飮酒禮)를 주관하고 향촌의 풍속을 교화하는 주된 역할 외에도 조선후기에는 수령의 보좌 역할을 하는 기구였다. 좌수(座首) 1인과 별감(別監) 3인 및 창감(倉監)·감관(監官)·풍헌(風憲) 등의 향임(鄕任)을 두었다. 여기에서 수신자는 향사당의 직임을 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동 문중 소장의 간찰 가운데 수신자가 향청 좌수를 지낸 ‘김 생원’인 문건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이 간찰의 수신자가 역시 좌수 김 생원으로 추정된다.
상대와 격조한지 꽤나 오래되어 그립던 차라고 하면서, 장마더위에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좋은지 물었다. 자신은 더위에 몸이 상하여 쓰러져 지내고 있는 근황을 알렸다. 본론으로, 이번에 상대에게로 간 김기민(金己民)이라는 자는 비록 백성의 신분이긴 하나 최 상사(崔上舍) 집안의 비부(婢夫)이고 자신의 집에서 부리는 고노(雇奴)라고 하면서, 재작년에 상경(上京)하여 번(番)을 섰음에도 이번에 또다시 번상군(番上軍)에 뽑혔음을 언급하였다. 이는 아마도 아랫사람들이 농간을 부린 것 같은데, 만일 이 사실이 맞는다면 자신의 집안 가을걷이 때 낭패를 보게 되므로 다른 자를 뽑아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본문의 요지는 발급자 집안에서 부리던 고노 김기민이라는 자가 번상군에 차출 되자 그를 제외시켜 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향청 수석을 맡고 있는 수신자에게 청탁하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당시 향청에서 좌수와 별감 아래의 향임인 창감 등은 관속(官屬) 아전들의 업무를 감독하고 전정(田政)‧진휼‧환곡‧수세(收稅)‧차역(差役) 등의 실무를 일선에서 주관하는 역할을 했었다. 본문에서 언급한 “아마도 아랫사람들이 농간을 부린 듯하다.[似是自下幻弄]”라고 한 말에서 아랫사람은 발급자가 좌수인 수급자에게 이 간찰을 발급한 것으로 보면 관속 아전이라기보다 창감 등의 향임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군역 차정의 폐단이나 청탁 관행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제목 없음
省式 阻拜許久 悵昻曷極 不審潦暑 侍餘起居萬重 仰慰且溸 宗弟 傷暑委頓 悶事 就此去金己民 雖云百姓 卽崔上舍家婢夫 而弟家雇奴也 再昨年上京守番矣 今又更抄云 而數次來促 似是自下幻弄 而若是的奇 則弟家之當秋良貝 無所容言 不得已昻煩 望須另念圖之 抄送他漢 俾免臨時敗農之地 如何 若送此漢 則他無使喚 兄我之間 豈無急難之誼乎 切企切企 餘不備狀 兄照
乙之閏月 念七 宗弟 啓源 拜
鄕射堂 執事 入納 長峴 宗弟 候狀 [着圖書] 謹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