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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B017_01_A00087_001
- ㆍ입수처
- 강릉김씨 노가니 김진사댁(김영유)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4년 이지억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
이지억(李之億, 1699~1770,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미상인(?~?,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54년 3월 16일간지연도 갑술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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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27.7 × 3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술년(1754) 3월 16일에 복제(服弟) 이지억(李之億, 1699~1770)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갑술년(1754) 3월 16일에 복제(服弟) 이지억(李之億, 1699~1770)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服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면서 당시 복상(服喪)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江陵守 候狀’이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강릉부사에 재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祥雲督郵 記室’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당시 상운도찰방(祥雲道察訪)에 재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운도는 강원도 양양 소재의 상운역(祥雲驛)을 중심으로 연창(連倉)·오색(五色)·강선(降仙)·인구(麟丘) 등 15개의 속역을 포함한 역도(驛道)였다.
지난번 영월[越州]로 가는 길에 마침 강릉의 경계에서 상대의 행차가 지나가는 광경을 보았지만 서로 만나서 회포를 풀지 못해 서운했다고 하면서, 꽃이 피는 화사한 계절에 상대의 안부가 좋은지 물었다. 자신은 나이만 들면서 근근이 지내고 있고, 조카의 발인을 아직 치르지 못해 마음을 가누기 힘들다고 했다. 본론으로, 별지에 적힌 내용은 바로 경내의 친지들이 그간의 일을 범범하지 않게 하여 이미 상사(上司)가 거처하는 곳에 있으니 법대로 다스려야 하겠지만, 역한(驛漢)이 중간에 농간을 부려 여러 항목을 침탈한 것 때문이라고 하니 고소한 내용을 잘 채택하여 낱낱이 시행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일은 이미 이치나 정황상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니 잘 시행해 주기를 믿겠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언급된 사건은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당시 상대의 관할 역 소속의 역노가 엮여있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일을 상의하고 해결하고자 이 편지를 발급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지방 행정 및 사회 현상과 관련하여 벌어진 향중 작폐사와 같은 실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이지억은 자는 덕수(德廋), 호는 성헌(醒軒), 본관은 연안(延安), 부친은 이만성(李萬成), 생부는 이만선(李萬善)이다. 1751년(영조 27) 신미 정시 병과 20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강릉부사‧도승지‧공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1753년 10월 5일에 강릉부사에 제수되어 11월에 부임한 뒤 1754년 4월에 교체되었다.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교체 사유에 대해 “대론 때문에 관직을 버림[以臺論棄官]”이라고 되어 있다. 당시 대론은 정언 정술조(鄭述祚)의 달사(達辭)를 가리키는데, 그가 별다른 재주나 공로가 없는데도 가주서(假注書)에서 승륙(陞六)된지 얼마 되지 않아 사헌부와 승정원에 제수되고, 도승지까지 파격적으로 승진한 것에 대해 논핵했던 내용으로 확인된다.
